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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버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는 것 같고, 투정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쉥, 하고 가로 질러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든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밀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브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시집「공손한 손」(창비시선, 2009)
― 웹진《문장》 (2007. 7월호)
시가 국어 정화나 순화에 얼마나 일조를 하고 있을까요...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서 쓰고 찾
아서 쓰고 하는 것은 비단 시인 뿐 아니라 글을 쓰는 문학가들의 의무이자 사명일진대 시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 2연 8행처럼 '제동장치'를 브레끼로, 1연 2행 '안전모'를 화이바로 썼는
데 '화이바' 대신 영어인 '헬멧' 이나 또는 우리말인 안전모, 제동장치로 대체했다면 시의 맛
이 어떠했을까요.
델레비젼을 구어체로 테레비 하듯 브레이크도 브레끼로 썼는데요. '간간, 브레이크를 밟으며
'브레끼' 를 '브레이크'로 했으면 늘어지는 것 같은데 기의 문학이 아닌 기표의 문학인 시에
서는 참 까다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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