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오명선 - 우기의 배경 / 우기(雨期)의 배경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0. 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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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의 배경

 

오명선

 

 

먹구름이 무거운 이유는
산란되지 못한 빛의 무게 때문이다
저기압의 행로를 결정짓는 건 오로지 바람뿐,


빌딩의 긴 그림자를 건너온 구름들
착지할 곳을 찾고 있다
바람에 밀려 流産이 되어버린 하늘이
조각조각 흘러내린다


나는 과연,
수직의 통증을 곡선으로 견딜 수 있을까
수많은 낙뢰를 삼키며 살아온 피뢰침과 평행일 수 있을까
꺾인 날개를 쓰다듬으며
저물어가는 계절을 둥글게 끌어안아야 한다

 
빗방울이 생각을 밟아가는 동안
한 다발의 먹구름이 현관문을 밀고 들어선다

 

그렇게,
또 다시 우기가 무릎까지 차오르고
입을 꽉 다문 내 침묵이 불안해지지 시작한다


우르르 쾅쾅,
어둠의 배경 위로 떠오르는 풍경이
네 혀처럼 붉다

 

 


-계간『시와 사람』(2011, 가을호)

-웹진 시인광장 선정『2012 올해의 좋은시 100選』(아인북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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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지에 발표한 시를 시집을 내면서 여러군데 수정한 시

 


우기(雨期)의 배경


오명선

 

 

저기압의 행로를 결정짓는 건 오로지 바람이었다


내 생이 무거운 이유는
빛을 버린 무게 때문


생의 굴곡을 건너온 구름들
착지할 곳을 찾고 있다
바람에 밀려 流産이 되어버린 하늘이
조각조각 흘러내린다


다시,
수직의 통증을 곡선으로 견딜 수 있을까
낙뢰를 삼키며 살아온 피뢰침과 평행일 수 있을까
꺾인 날개를 쓰다듬으며
저물어가는 계절을 둥글게 끌어안아야 한다


바람을 따라 생각을 밟아가는 동안
한 다발의 먹구름이 현관문을 밀고 들어선다


우기가 무릎까지 차오르고
입을 꽉 다문 침묵이 불안해지지 시작한다


나프탈렌 냄새가 나는, 슬픔은
오래도록 가슴에 보관되었다


구름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나는 누군가의 배경이었다

 

 

 

-시집『오후를 견디는 법』(한국문연,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