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유리인간 증후군 / 홍순영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0. 4. 12:29
728x90

  유리인간 증후군


  홍순영

 


  오늘도 유리들은 소리 없이 나의 지문을 훔친다
  나의 이력은 조금씩 벗겨져 그들의 기억에 쌓이기 시작한다
  한 곳을 오래 서성이는 자,
  감정의 파문이 넓은 자,
  나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홀로 소용돌이친다.


  유리가 나를 훔치는 동안 내 몸의 번식하던 균열
  단단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비추는 순간
  나는 한 장의 소음으로 바닥에 눕는다
  나의 귀를 밟고, 입술을 뭉개며 태연히 지나가는 사람들


  문이 열리며 부서진 내가 건물 안으로 빨려든다
  나는 사람들 옷자락에, 핸드백에, 머리카락에 조용히 들러붙는다
  쇼윈도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다가 유리조각을 발견하고 훔칫 놀라는
사람들 
  나는 수백 개의 지문을 지닌 채 유령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
  처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문을 밀치며 밖으로 나오자 습관처럼 나를 훔치는 유리
  나의 지문은 반사적으로 좀 더 딱딱해진다

    

 

*유리인간증후군 -어디에 조금만 부딪쳐도 쉽게 깨지고 부서지는 증상으로 골
석화증이라고도 한다. 

 

 


-웹진『시인광장』(2012년 4월호)
2012-10-03 목요일 12시 28분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월의 풀밭 / 유종인  (0) 2012.10.05
시간들 / 김사인  (0) 2012.10.05
호모두르(homo-door) / 양은숙  (0) 2012.10.04
돌의 부화기 / 김춘순  (0) 2012.10.04
밤 외출 / 최은묵  (0) 2012.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