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감자를 캐며 / 임세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0. 6. 09:40
728x90

감자를 캐며


임세한

 

 

넓고 가파른 밭
익모초와 바랭이가 시들시들 조는 한낮
어머니, 흰 수건 머리에 두르고 뜨거운 고랑에 오른다
무딘 호미의 날이 흙덩이를 뒤집으면
하얗고 통통한 감자알들이 밭고랑에 툭툭 불거졌다


주르르 흘러내리는 등짝의 땀이
바작바작 타들어가는 입술이, 중얼중얼 감자 줄기를 캐낸다
입속에서 툭툭 불거지는 감자알들을 뱉어놓는다
더위에 지친 대추나무를 바람이 흔들고 가면
은빛 팔랑대던 잎들이 어머니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굵고 실한 놈으로 가득 채우던 싸리나무바구니
어머니가 지나간 고랑마다 초여름이 푸르게 길을 놓는다


저것들,
밭고랑에 넘쳐나는 눈물의 탯줄을 자른
희고 통통한 감자들, 저들을 키운 것은 땅이 아니라
날마다 휘어지던 허리의 통증이라는 것을
어머니 종아리레 퍼렇게 내비치던 거미줄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그해 유난히 무덥던 하지 무렵엔
벗겨진 정수리마다 자글자글 들끓던 태양이
야윈 어머니 등짝을 빨갛게 태웠던 것도

 

 

 

<2012 제4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2012-10-06 토요일 오전 09시 3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