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빛은 얼마나 멀리서 / 나희덕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0. 11. 23:31
728x90

빛은 얼마나 멀리서


나희덕

 


저 석류나무도
빛을 찾아나선 삶이긴 마찬가지,
주홍빛 뾰족한 꽃이
그대로 아, 벌린 입이 되어
햇빛을 알알이 끌어모으고 있다


불꽃을 얹은 것 같은 고통이
붉은 잇몸 위에 뒤늦게 얹혀지고
그동안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 사랑의 잔뼈들이
멀리서 햇살이 되어 박히는 가을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 나이가 되어도
빛을 찾아나선 삶이기는
마찬가지, 아, 하고 누군가 불러본다

 

 


-시집『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
2012-10-11  목요일 23시 2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