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이름 / 최정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0. 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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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최정란

 

  1.
  굳이 절약할 생각은 아니지만 나는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다
  굳이 아껴두어야 할 것도 아닌데다
  형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찾지 않으면 허공 어딘가 떠돈다
  쏜살같이 귓전으로 달려오지만
  부르는 순간 사라진다
  남이 주로 사용하는데,
  실은, 아무도 쓰지 않는 날이 더 많다
  가끔 혀끝에서 맴돌다
  끝물포도 알맹이처럼 터지지만
  말라붙은 포도잎이
  문패 대신 붙어있을 때도 있다

 

  2.
  내 것인줄 알았는데, 본래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터넷 검색해보면, 나는 내가 아닐 때가 더 많다
  투병중인 환자, 재무재표를 공개중인 회사대표, 푸라하 민박을 예약

한 여행객, 슬픈 영화의 주인공, 토피어리 만들기를 가르치는 교수, 플

라맹고 강사, 퇴직공무원 빨간 볼링공을 던지는 아가씨, 부당해고를 항

의하는 노조원,


  적어도 아홉 명의 내가 아닌 내가 제각기 나를 살고 있다
  가끔 나는 그 이름에 나를 집어 넣어보기도 하는데
  남의 옷에 때 묻히는 게 아닌가 하여 조심스럽다

     

  실은 그들이 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누구지

 

 


-계간『시와사람』(2010, 겨울호)
2012-10-17 수요일  0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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