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임신 / 황수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0. 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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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황수아

 


내 뱃속에서 음표가 하나 자라기 시작했다
그 음표는 한 번도 연주되지 않았으므로
아직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존재와 존재의 가능성 이에 귀를 갖다 대면
음악의 심장소리가 들린다
나는 한 위대한 지휘자가 무명의 음표 앞에 서는 것을 기대한다
그가 악보 위에 그려진 단 하나의 음표를 깨워낼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을까


열 달의 먼 길은 바다로 이어지고
악보는 바다로부터 음표를 건져 올리는 어부의 그물을 닮았다
나는 내 자신이 어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해저에서 올라오는 선율의 입질을 기다리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게 이유 없는 사랑을 느낀다


무명의 음표가 축축한 콩알처럼 발아되는 동안
나는 내 자신이 음표였던 순간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다
물 안에서 물 밖으로 흐르는 비밀스런 음악은
몸 안에서 몸 밖으로 흐르는 한 아이의 울음소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내 몸이 바다에 잠기면 내가 있던 자리에서
침묵을 닮은 음표가 연주될 것이다


 

 

-계간『시와 문화』(2010, 가을호)
2012-10-18 목요일 0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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