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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작가를 만나다]강유정과 첫 시집 ‘상처적 체질’ 낸 류근
입력 : 2010-05-02 17:00:12ㅣ수정 : 2010-05-03 00:14:46
ㆍ“나는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
“어떻게 지내시나요? ‘요즘, 술 마시고 뭐 그렇게 삽니다.’ ” 시인의 첫 시집 <상처적 체질>(문학과 지성사)에는 ‘시인의 근황’이라는 작품이 있다. ‘모처럼 우연히 만난 유명 시인에게/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묻자/ 그는 일행들에게 농담이나 건넬 뿐/ 내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시인은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유명 시인이 되면 묻는 말에 대답 안하고 그러는 건가 보지?’ 라며 딴죽을 건다.
하지만 딴죽은 공격이 아닌 상처가 되어 시집 한권 못낸 초라한 등단 시인의 가슴에 남았다. 그 상처와 흉터, 자조와 유머가 쌓여 시인의 첫 시집이 마련되었다. 하여, <상처적 체질>(문학과 지성)은 시인 류근이 데뷔 이후 18년간 쌓아온 상처다.
류근의 시집에 실린 시들은 인용부호를 떼고 문장 속에 넣어도 자연스럽게 구어체로 읽힌다. 술 마시고, 부아가 나고, 연애도 하고 슬퍼하는 한 명의 생활적 시인이 다가온다. 독자는 시집을 읽으면서 한 시인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괜한 걸 물었다가/ 괜히 상처받는 이 버릇’을 지니고 있다. 시인과 생활인은 이 질문에서 나뉜다. 생활인은 괜한 걸 묻긴 하지만 상처받진 않는다. 그런데, 시인은 괜한 걸 물었다며 상처를 받고 또 그것을 체질로 만든다.
문학평론가 강유정(오른쪽)과 류근 시인이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카페에서 류 시인의 <상처적 체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강씨는 류 시인의 시에 대해 “웃기고 슬픈 일상의 풍경이 들어차 있다”고 평가했다. | 정지윤 기자
뻔뻔해지기 어려운 체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니 공황장애니 폐소공포니 이름도 복잡한 질병들이 그를 엄습했다. 생활인으로 살던 류근이 어느날 갑자기 비행기를 못 타고, 갑갑한 공간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오진으로 판명되었지만 오진이 정답을 가르쳐 주었다. 시를 쓰지 않아서, 그래서 질병이 생겼다는 정답 말이다. 부랴부랴, 다시 시인으로 돌아왔다. 중학교 2학년 시절부터 막연하게나마 가지고 있었던 ‘시인’이라는 장래 희망에 구체적인 징표 하나를 달아 준 셈이다.
요즘은 연애시가 드문데, 류근의 시집에는 연애와 이별, 상처투성이다. 류근 시인은 자신을 이별의 천재라고 소개한다. 죽을 때까지 연애를 꿈꾼다는 그는 자칭, ‘삼류 트로트 통속 시인’이다. 그런데, 그 통속의 세계가 만만치 않다. 80년대 시를 배워서 90년대를 살아오다 보니 너무나 무거운 것들에 염증이 났다고 한다. 시가 너무 어려워진 세상, 시 쓰기가 어려웠던 세상, 시인조차 시읽기 힘든 세상, 그래서 류근은 읽히는 시를 선택했다. “통속했으면 좋겠다. 나는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다.” 시인은 말한다.
그러고보니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통속적 인물하고 닮았다. 시인은 부정하지 않는다. 애인이랑 홍상수 영화 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창피한 일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아이를 낳고 난 이후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쓰기가 더 어려워졌다. 증여와 모성애조차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데 감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라며 말끝을 흐린다.
그런데 왜 그렇게 연애하려고 애쓰느냐고 묻는다. 그랬더니 류근은 쓸쓸하기 짝이 없지만, 사랑에 구원이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기대한다고 대답한다. 끊임없이 상처받고,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것, 그리고 그는 이를 일컬어 삼류라고 지칭한다.
그러면 당신이 생각하는 삼류란 도대체 뭔가 물으니, 자신의 진짜 열정이 현실에서 저속하게 깨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촌스럽게 깨지는 것, 가슴 속에 있는 진짜 영혼이 어울리지 않는 현실에 부딪혀 깨지는 것, 그래서 진짜 삶을 살지 못하고 자기 의지와 무관한 삶을 끊임없이 살아내야 하는 것이, 그것이 삼류인 것 같다고 대답해준다. 듣고 보니, 말하는 당신도, 듣고 있는 나도, 모두 삼류가 맞다.
“시인 이문재는 자신에게 고아 의식이 있다고 하던데, 저에게는 서자 의식이 있는 듯싶어요. 누군가에게 안주하기 어렵고, 마음 속 어딘가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늘 꿈꾸죠. 하지만 이 바람은 늘 헛되게 끝나요. 결국 상처가 되리라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또 꿈꾸죠.”
그래서 시인의 첫 시집 표제작은 <상처적 체질>이 되었나 보다. 최근 뜨거운 논쟁의 중심이 된 시와 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남진우 표현에 따르자면 시가 은퇴의 시기를 놓친 불우한 연예인이 된 건 아닐까, 죽는 사람도 없는 동네에 장의사만 난립하는 각축처럼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런 말을 덧붙인다. 유사이래 지금처럼 대중들에게 시가 사랑받았던 적 있을까? 블로그, 카페, 온갖 개인 미디어들이 시를 필요로 한다. 사람들이 각자, 자발적으로 시를 선택해 자신의 ‘홈’에 가져다 놓는 일, 그것은 참 고무적인 일이다. 대중들은 시를 원하는 데 시인이 시를 주지 못한다. 난, 대중들과 같이 갔으면 좋겠다. 문화재 답사 훈련을 통해 안목을 길러가듯이 시 역시도 그렇게 훈련하면 되지 않을까? 반 걸음쯤 대중 앞에 서서, 대중과 함께 시를 이끌고 나가는 것.
아마도, 그것이 바로 류근 시인이 말하는 통속인가 보다. 연애에 실패하고 아내의 무릎에 누워 다시 또 연애할 힘을 얻는 그 웃지 못할 희극을 살아가는 것(‘가족의 힘’). 그래서 이 지극한 통속 안에서 ‘도망간 여자 붙잡는 법’을 창안하고, ‘과거를 ( )하는 능력’을 연마하는 것. 이 웃기고 슬픈 일상의 풍경, 류근의 시에는 이런 삶이 들어차 있다.
■ 시인 류근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에서 자랐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동 대학원 졸업.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가 당선되었다.
■ 문학평론가 강유정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경향신문·조선일보에 문학평론이, 동아일보에 영화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에서 자랐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동 대학원 졸업.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가 당선되었다.
■ 문학평론가 강유정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경향신문·조선일보에 문학평론이, 동아일보에 영화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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