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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굴을 밟다
임희숙
내 신발 아래 깔려죽은 개미들아
뭉개진 문을 찾느라 더듬이를 흔들어대는 어린 것들아
무너진 개미굴 곁을 떠나지 않고
집 나간 식구를 기다리는 개미들아
새 땅을 찾아 떠나는 부족을 따라가지 못하고
유민처럼 떠돌다 굶어 죽은 늙은 개미와
무당벌레의 날개를 붙잡고 잃어버린 동무의 안부를 묻는
눈 먼 개미들아 미안하다
어미를 잃고 부랑하다가
귀신에게 잡혀 먹은 개미지옥 안의 젊은 개미들아
미안하다
힘세고 강인한 수개미들과 수태로 한평생을 보내는 여왕개미는
보지를 못 했으니 알지도 못 하겠다
잃어버리고 떠나보내고 허리가 끊어지도록 기어 다니는
일개미만 가득한 산길
일하고 일하다가 내 발에 밟혀 죽은 개미들아
내 심장은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미안하다 미안하다
힘줄이 푸르고 피가 붉어서
좌파의 심장이라서 더 더 미안하다
- 간『문학청춘』(2011,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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