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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맹문재(1963∼ )
대학교수의 손이 왜 이래?
악수를 하는 사람들은
나뭇등걸처럼 갈라진 나의 손등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놀리기도 한다
나는 정답 같은 당당함을 가지려고 하면서도
그때마다 움츠러든다
내가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는 이유는
위생적으로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닮고 싶은 손이 있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의 [노동자와 흰 손의 사나이]에 나오는 사나이는
당국의 눈치보다 노동자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육 년이나 쇠고랑을 찼고
마침내 교수형을 선택했다
나도 빈 요구르트병 같은 노동자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출석 확인을 하듯 일기를 쓰고
연서를 하고
때로는 집회에 나가지만
흰 손의 사나이가 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최소한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45』(동아일보. 2012년 12월 26일)
기사입력 2012-12-26 03:00 기사수정 2012-12-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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