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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어주기
김승희
빈손이 없다.
사랑을 받으려고 해도 빈손이 없어 받지 못했다.
한 손엔 미움,
한 손엔 슬픔,
받을 손이 없었다.
사랑하지 못했고 사랑받지 못했다.
언제나 가시에 찔리고 있었다.
온 손이 가시에 찔려 불붙은 듯 뜨거울 때
사랑을 주려고 해도 손이 아파 주지 못했다.
가시를 오래 쥐고 있어 칼이 되었고
미움을 오래 들고 있어 돌이 되었다.
칼과 돌을 내려놓지 못해서
사랑도 받을 손이 없었다.
내어버려라,
나무가 가을을 우수수 내려놓듯
네 칼을 네 돌을 내어버려라.
내어주어라,
십자가에서 온몸의 피를 다 쏟아내셨듯
네 안의 다스한 심장의 한 방울까지 다 내어주어라.
하얀 김 펄펄 나는 빠알간 심장에서
칸나 꽃이 움트고, 글라디올러스, 다알리아, 히야신스,
아네모네......또 무슨 그런 빠알간 꽃 이름들아,
도끼날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스러지기 전에 다 내어주어라
-김승희 시산문집『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마음산책.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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