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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신달자
예고 없던 바람이 폭동처럼 크게 어깨를 털고 지나간 뒤에
과수밭에는 과일이 우수수 떨어지고
제법 큰 나무들이 허리가 부러진 채 거리에 드러눕고
자동차를 기우뚱 날 듯 비틀거리고
우지끈 부실한 지붕들이 미끄러져내리고
날리고 뒤집히고 찢기고 꼬이고 깨지고
그렇고
도리 없이 세상은 온통 이별로 낭자하고
땅의 것들 허공으로 치솟아 난동을 부리며 갈 곳 없고
떨어져내려도 제 자리가 없고
지리이동을 하여 모양 또한 일그러졌고
그러하지만 난 알고 알고 있고
오직 사람 하나 꿈쩍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젊은 얼굴로 웃고 있고
그대로 변함없고
내 사랑으로 치면 폭동의 바람쯤이야 그럼 그쯤이야…
-천양희|장석남 외 지음『시, 사랑에 빠지다』(현대문학. 2009)
|시작노트|
사랑에 있어서 분명히 내 식이지만 변함없이…… 라고 하늕 말.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 하나
를 좋아하면 지긋지긋하게 늘어붙는 식의 변함없는 사랑을 하고 싶
어한다.
사랑인까 변하기도 해야 한다. 그러면 상처도 덜하지 않을까. 내
사랑법은 그래서 조선 후기쯤의 재래식이 아니라 고조선쯤으로 구
식이다. 장점도 있다. 여기저기 기웃거릴 필요가 없다. 늘 거기 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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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경남 거창 출생.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봉헌문자』『모순
의 밤』『아버지의 빛』『오래 말하는 사이』『열애』등. <대한민국문학상> <대
한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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