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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 김춘수 -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 김왕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2. 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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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마지막 행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희보가 엮은 한국의 명시에는 '의미'

 

 

시인 100명이 추천한 현대시 100주년 기념에는 '의미' 가 '눈짓' 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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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김왕노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르고 떠난 후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누군가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때로는 위험한가를 알지만
자작나무나 풀꽃으로 부르기 위해
제 영혼의 입술을 가다듬고
셀 수 없이 익혔을 아름다운 발성법
누구나 애절하게 한 사람을 그 무엇이라 부르고 싶거나 부르지만
한 사람은 부르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거나
부르며 찾던 사람은 세상 건너편에 서 있기도 하다
우리가 서로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무엇이 되어 어둑한 골목이나 전쟁터에서라도
환한 외등이나 꽃으로 밤새 타오르며 기다리자
새벽이 오는 발소리라도 그렇게 기다리자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불러주었듯
너를 별이라 불러주었을 때 캄캄한 자작나무숲 위로
네가 별로 떠올라 휘날리면 나만의 별이라 고집하지 않겠다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시집『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천년의시작,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