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똥풀
양문규
산동네 돌담길 따라가다
꽃보다 먼저 사랑을 꿈꾸었으리
뒤척이는 몸 일렁일 때마다
사립문 금줄 타고 달빛에 젖었으리
옛날도 그 옛날도 그러했으리
해와 달 바뀌고
별이 바뀌었어도
애기똥풀, 노오란 꽃
-시집『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실천문학상.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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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 2
나태주
무릎걸음으로
앉은뱅이 걸음으로
애기똥풀 꽃들이 처마 밑
물받이 홈통 가까이까지 와
피어 있다
풀꽃 이름
많이 아는 것이
국어 사랑이고
국어 사랑이 나라
사랑이란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애기똥풀 꽃 속에서
동그란 안경을 쓰고
웃고 계셨다.
- 시집『산촌엽서』(문학사상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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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꽃
권달웅
꽉 막힌 추석 귀향길이었다
참아온 뒤를 보지 못해
다급해진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산골 외진 숲 속에 뛰어들었다
벌건 엉덩이를 까내리자
숲 속에 숨었던 청개구리가 뛰어 올랐다
향기로운 풀내음 속에서
다급한 근심거리를 풀기 위해
혼자 안간힘 쓰는 소리를 듣고
풀벌레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조용해, 저기 사람이 왔어
살다보면 삼라만상의 복잡한 일 중
더러운 일 한두 가지가 아닌데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처럼
참으로 어려운 건 똥 참는 일이다
참으로 시원한 건 똥 싸는 일이다
숲 속이 노란 애기똥풀꽃이 웃었다
-계간『유심』(200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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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애기똥풀
황인산
개심사 들머리 애기똥풀은 모두 옷을 벗고 산다.
솔밭에서 내려온 멧돼지 일가 헤집는 바람에 설사병이 났다.
개중에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얼굴 마주보며 괴춤만 내리고 쉬를 하고도 있지만
무리무리 옷을 훌렁 벗어젖히고 부끄러움도 모른 채 물찌똥을 누고 있다.
사천왕문 추녀 밑에서도 노스님 쉬어 가던 너른 바위 옆에서도
산길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엇이 노란 똥물을 갈기고 있다.
부글부글 끓는 배를 옷 속에 감추고 산물을 두드린다.
이 문만 들어서면 아침까지 찌들었던 마음도 애기똥풀 되어 모두 해소될 것 같다.
산 아래서부터 산불을 놓아 젊은 비구니 얼굴을 붉게 물들인 지가 언제인데
절집 위 옹달샘 풀숲까지 노란 산불에 타들어 가고 있다.
개심사 해우소는 천 길이나 깊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요동치는 배를 잡고 허리띠를 풀며 뛰어 들어갔지만 이런 낭패가 있나, 깊이가 몇 길은 되어 보이는데 얼기설기 판자로 바닥만 엮어 놓고 군데군데 구멍만 뚫어 놓았지 칸막이가 없다.
엉거주춤 볼일 보던 사람, 앉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 것도 아닌 자세로 오줌을 누는 사람들의 시선이 참 어정쩡하다.
몇몇의 눈길이 동지애를 느끼며 같은 자세를 취하길 원하였지만 안사부인 볼일 보는 화장실을 열어본 것처럼 놀라 아랫배를 내밀고 엉덩이에 댄 두 손에 힘을 주고 나왔다.
천 년 전 처음 이곳에 볼일을 본 스님은 자꾸 다시 들어오라 하는 것 같은데
보잘 것 없는 내 아랫도리 하나로 하늘도, 가냘픈 애기똥에 기댄 마음도 옷을 벗지 못한다.
개심사를 감싸고 있는 상왕산은 노란 산불에 타들어 가고 옆 칸에서 나오다 눈길 마주친 젊은 비구니의 얼굴엔 진달래 산불이 다시 옮아 붙고 있다.
(『제15회 신인지용문학상 당선작』.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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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
김진돈
언젠가는 애기똥풀에 대해 맛을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맵고 쓴 애기똥풀에 대해 제대로 씹어보지 못했다 거기에 피어
있던 백굴채의 노랑꽃, 한때는 단단했을 돌뎅이가 산기슭을 부드
럽게 감싸고 있다
아마 오늘도 말하지 못하고 지나갈 것 같다 초여름의 낮은 산
기슭, 길섶에 피어있던 애기똥풀, 네 장의 노란 꽃잎을 본 후 곱
슬털과 잎파리에 말을 대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다 애기똥풀에
한번 혀를 대보고 싶었다
낮은 산기슭에서 자라는 애기똥풀을 맛보고 있었다 알 수 없
는 놀라움에 흔들리는 애기똥풀을 나는 흔들리며 바라보고 있
었다 애기똥풀을 한번 빨아보고 싶었다 낮은 산기슭의 초여름,
애기똥풀 줄기를 꺽자, 애기똥 같은 황색유액이 나올 때 맛보던
그날 속쓰림이, 기침이, 사지마비가 풀어지곤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급작스레 흔들려 캄캄할 때가 있다
애기똥풀 속으로 들어가서 애기도 없고 똥풀도 없는 애기똥풀
의 생각으로 그렇게 애기똥풀, 언덕 너머에 애기똥풀이 있다 마
치 애기똥풀이 나인 것처럼 깨물어보고 싶었다
*백굴채: 애기똥풀의 학명. 맵고 쓴맛으로 항암작용으로 위궤양,
위암, 간암과 사지마비, 기침, 피부질환 등에 효능이 있다
-계간『문예연구』(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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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
이우림
쪽대문 귀퉁이에 울 엄마 피었네
어혈든 가슴엔 똥술이 좋다고
내 동생 똥 눌 때마다
약이라고 좋아하셨지
삼베조각보에 주먹밥처럼 싸서
할머니의 어머니도 쓰셨다는 백항아리에 넣고
술을 담갔지(익기를 기다렸지)
말할 때마다 방귀처럼 새 나오던 신음
나도 동생도 매미처럼 따라하던 소름 같은 소꿉놀이
그땐 바보짓인 줄 몰랐네
동생은 유치원생 되면서 더 이상 엄마에게 약을 주지 않았고
똥술 항아리가 묻힌 담벼락 밑엔 노오란 애기똥풀만 헤살거렸지
묻혔던 약항아리도 뒤주 위 제자리를 찾고
엄마무덤가 애기똥풀, 황금똥꽃으로 손짓하네
무심히 꺾인 꽃모가지
노란 젖물이 똑똑 끊어지네
말라버린 엄마 젖이 방울방울 피어나네
가마솥에 양제기 넣어 끓는 밥물 받아 먹였다고
염불하듯 하시더니
쪽대문 귀퉁이 배시시 내가 웃고 있네
ㅡ웹진『시인광장』(201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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