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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감 / 고영민 - 맨발 / 문태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2. 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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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감

 
  고영민

 

 

   민물에 담가놓은 모시조개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몇번을 소리쳐 부

르자 당신은 간신히 한쪽 눈을 떠 보였다 눈꺼풀 사이 짠 물빛이 돌았

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나를 물속에 새겨넣겠다는 듯 오랫동안 쳐다보

았다 그러렁, 그러렁 입가로 한움큼의 모래가 토해졌다 간조선을 지나

들어가는 당신의 흐린 물빛을 따라 축축한 한 생애가 패각 안쪽에 헐

겁게 담겨 있었다 짠물을 걸러내며 당신은 물무늬 진 사구를 온몸으로

 기고, 몸을 잊으려 한쪽 눈을 마져 닫자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울컥울

컥, 검은 모래가 걷잡을 수 없이 토해졌다 나는 당신의 손을 움켜쥔 채

더 깊은 물밑까지 따라들어갔다 여윈 갈빗대에서 해조음이 들려왔다

어느 순간, 이제 오지 마라! 따라오지 말라고 이놈아! 당신의 불호령을

들었다 두꺼운 껍질 밖으로 나는 움찔, 한순간 떠밀려나왔다  패각을

움켜쥔 채 꼭 사나흘만 더 묵고 싶다던 당신의 늙은 아내가 밀려나왔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몸 밖으로 검은 해변을 푸륵푸륵, 싸놓았다 지끄럽

던 한 생애가 말갛게 비워지고 있었다

 

 

 

- 시집『공손한 손』(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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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

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

고 슬픔을 견디었을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맨발』.창비. 2004)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4편 수록 중 1편. 2007)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7』(조선일보 연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