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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시인세계》신인작품 공모 당선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2. 1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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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시인세계》신인작품 공모 당선작

 

 

  당신 외 4편

 

    김도언

 

 

 

   당신은 지구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의 목소리를 갖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었던 사람이 오래 전 죽은 것은 온전히 당신의 불행이다. 매일매일 당신은 무릎 아래에서 올라오는 동생들의 저녁을 돌보고 어머니의 길고 긴 목을 닦아주었다. 오랫동안 배를 타다가 육지로 돌아온 거친 사내들은 당신의 생밤 같은 얼굴을 만지고 싶어 했다. 당신은 그 중 한 사내의 힘줄을 아무도 몰래 끊고 싶었다. 숲 쪽으로 세 번, 바다 쪽으로 두 번 울었던 여름, 당신은 정갈하게 애인과 헤어졌다. 피로 쓴 편지를 주고받은 적 없었으나, 심장에 그어진 파문 때문에 당신은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당신은 애인의 허리가 가르쳐준 굴욕을, 손톱을 베어내며 조금씩 떠올렸다. 하얀 종아리를 가진 애인을 죽이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달도 뜨지 않은 밤이 깊어, 마당에 매어둔 자전거들이 말처럼 휭휭 울었다. 당신은 관대한 사람들의 생애가 종종 실패하는 것을 목격했다. 별과 비와 시, 눈을 감아도 너무나 잘 보이는 것들만이 문제였다. 어머니의 배꼽을 베고 눈을 감은 아버지의 싱거운 모험을 생각하기도 했다. 동생들은 더디 자랐고 당신은 오랫동안 당신에 머물렀다.

 

 

 

  레비 스트로스의 청바지

 

 

 

   물경 101세로 세상을 떠난 문화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C. Levi Strauss)가 무질서와 우연에 기댄 삶의 샘플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이름과 같은 리바이스(Levi’ Strauss) 청바지를 입고 유인원의 유골을 채집하는 여행을 떠났다고 상상하자. 그에겐 제임스 딘 같은 늠름한 동행자가 없다. 그의 배낭 속엔 여벌의 청바지와 가죽신발, 지식의 풍속, 상상력의 논문집이 들어 있을 뿐이다. 그는 결국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유인원의 유적을 찾는 데 성공했다. 통곡하는 열대와 희희낙락하는 냉대 사이에서 우리의 잠은 누구에 의해 보호되는가라고 물었던 유인원의 흔적을 찾았을 때, 그는 인류가 불면증에서 구원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인원의 불면증이 다음 날 자신의 치부를 무엇으로 가릴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시작됐을 거라고 추정했다. 레비는 자신의 생각을 친한 시인에게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날 그는 내 형제들과 부모들이 나누었던 언어가 해방시킨 것은 슬픔밖에 없다고 말한 유인원의 기록도 찾아냈다. 레비가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을 때 청바지 자락이 천막처럼 펄럭였다. 보풀이 일었다. 바람이 관통하는 세계 속에 얼마나 풍부한 결핍이 있는가, 얼마나 무한한 부재가 사는가. 레비는 청바지 호주머니에 유적지에서 채집한 작은 볍씨와 눈썹과 각질 조각을 넣었다. 그러자 청바지에 불룩한 푸른 힘줄이 생겼다. 레비는 죽기 직전에서야 리바이스를 벗었다. 문화의 근육으로 단단해진 청바지의 빛은 어지간히 바래 있었다.

 

 

 

  스티븐스의 아침

 

 

 

스티븐스는 자전거를 닦는다

차가운 겨울 아침

스티븐스가 털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닦는다

그러니까 자전거를 닦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사소한 일일 테지만

스티븐스에겐 가장 스티븐스다운 일이다

스티븐스는 털모자를 벗고

자전거 바퀴에 달라붙어 있는 거리들의

혈액을 털어낸다

혈액이 반짝인다

스티븐스가 지나간다

스티븐스가 지나간 자리에

그가 닦은 자전거가 있다

아침도 먹지 않고

자전거를 닦는

스티븐스의 아침은 겨울의 외부에서 돌아왔다

스티븐스가 털모자로부터 멀어진다

낙엽이 어슬렁거린다

스티븐스의 자전거는 한번도 쓰러진 적이 없다

그걸 이해한 자 역시 스티븐스뿐이다

 

 

 

  그리고 너는

 

 

 

두 마리의 개가

차바퀴에 깔려 죽은

비둘기의 날갯죽지에 코를 박고

존재하지 않는

하늘의 냄새를 맡고 있다

그리고 너는

황홀하지 않아서

발가락이 시렵다

사랑 앞에 놓인 전치사를

지우던 밤

큰눈이 내린 도시의 까마귀들처럼

불편한 신경질 때문이라고

그리고 너는

나를 바라보던 마지막 눈을 닦고

그리고 너는

귀를 파다가 죽었지

죽어버렸지

 

 

 

  K의 장애

 

 

 

   성공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K는 우울증과 관련해 그 어떤 징후도 가져보지 못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는 주말마다 콤플렉스를 꺼내 체중계에 달아보곤 했다. 견디기 힘든 것은 콤플렉스에서 풍기는 악취였다. 나무를 잘 다루고 가족과 불화하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는데, 아주 가까운 사람조차 그것이 그의 고의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동료 시인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늘 다니던 길로만 다녔으며 우연히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에게 격렬한 살의를 느끼기도 했다. K는 물론 가족에게 전화 같은 걸 하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할 수 없을 때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지만 착한 아이들을 칭찬하지도 않았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날 때는 탁구장에 가서 탁구장 주인과 내기탁구를 쳤다. 그것이 그에게 있는 유일한 융통성이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잃어버렸다. 식초와 매운 것을 좋아했고 구두는 검은색만 신었는데 너무 자주 빨리 걷는 바람에 구두굽을 자주 바꿔야 했다. 언젠가부터는 식초에 흥건히 젖은 구두코를 빨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지만 그는 그것을 실행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는 병적으로 강을 좋아했다. 특히 수변에 지어진 수영장을 좋아했다. 수영장에 딸린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젊은 여자들의 이름을 상상하다 보면 지루한 계절이 금방 지나갔다. 가끔 그의 상상 속에서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언어가 태어나곤 했는데 그는 그것들을 모두 시에 사용하지는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K는 가끔 시를 부정하기도 했다. 그의 시는 그의 미각과 그의 상상력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의 시는 언제나 열심히 역부족이었고 그의 인격이나 건강을 호전시키지도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나쁜 시를 쓰는 것밖에 없었다. 그의 나쁜 시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젊고 어리석은 시인 몇몇은 그의 나쁜 시에 열광했다. K는 나쁜 시에 일가견을 갖게 되었다. K는 오랫동안 슬픔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것은 그가 경멸하고 조롱했던 것들을 용서할 때 찾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한테도 용서받지 못했고, 그것은 그를 용서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들을 그가 난폭하게 척살했기 때문이다. 그는 힘껏 용서에서 도망쳐 장애의 세계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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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1972년 충남 금산 출생.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그동안 장편소설과 소설집 등 6권의 소설책과 1권의 산문집을 펴냄.

               현재 도서출판 '열림원' 편집장.

 

 

 

심사평———————————————————————————————————

 

  서사가 압축된 시가 되었다

 

 

   이번 제19회 신인작품공모에는 우편 32명, 온라인 74명, 이메일 90명, 총 투고자 수는 196명이고 총 투고 편수는 2천여 편이다. 그 가운데 예심을 거쳐 본심으로 넘어온 예비 시인은 24명이다. 24명 예비 시인들의 작품 수준은 ‘예비 시인’이라 불러줄 정도의 시적 기량과 함량을 갖추고 있다. 이분들 가운데서 마지막 최종심까지 남은 사람은 기랑의 「스탕달신드롬」(외 9편), 김우진의 「막도장」(외 9편), 손상호의 「청암사」(외 9편), 김도언의 「당신」(외 14편) 이상 네 사람이다.

   김우진의 「막도장」은 작품 한 편을 놓고 볼 때는 흠 잡을 데 없는 좋은 시다. 그러나 다른 투고작들과의 편차 때문에 탈락했다. 기랑의 「스탕달신드롬」도 선자들의 많은 논의를 끌어냈으나 역시 다른 투고작과의 편차가 컸다. 손상호의 「청암사」는 서정적인 수묵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시였다. 그러나 어딘가 약하고 모자라게 느껴진 것은 선자만이 아니었다.

   당선작으로 뽑힌 김도언의 시들은 선자들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김도언의 시 「당신」은 서사의 형태를 취한다. 가족사의 이야기와 함께 그들의 축약된 삶과 의식이 종횡으로 엮어져 있다. 그 속에 화자의 은원恩怨과 애증愛憎이 교차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화자의 진술이 서사적일 때 시적 긴장이 풀어지거나 장황해질 수 있지만, 김도언의 시들은 그것을 잘 극복해내고 있다. 「K의 장애」나 「레비 스트로스의 청바지」의 경우가 그렇다. 밀도 높은 소설의 소재가 한 편의 짧게 압축된 시로 탄생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김도언의 시적 기교와 역량이 잘 드러나 보이는 시는 「스티븐스의 아침」이다. 간결하고 활달한 겨울 아침 이미지가 반짝이는 시다. 무겁고 중후한 김도언의 산문시 계열의 시도 자기 목소리를 갖추고 있으나 가볍고 경쾌한 이런 류의 시풍詩風이 개성을 갖춘 신인으로서 더 기대를 갖게 하는 이유가 된다. 김도언의 새로운 시인으로서의 활약을 기대한다.

 

   _김종해(시인)

 

 

 

  감성과 논리의 통합

 

 

   예심 통과 작품을 대상으로 장시간의 논의 끝에 개성이 뚜렷한 네 사람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요즘 신인 응모 작품의 특징 몇 가지는 시의 길이가 길다는 것, 시어의 주석이 붙는 작품이 많다는 것, 그만큼 낯선 외래어가 많이 사용된다는 것 등이다. 이런 현상은 작품을 쓸 때 복합적인 사유가 동원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의 삶과 사회가 다층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반영하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문제다. 형식에 부합하는 정당한 논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손상호의 작품은 독특한 체험을 독특한 언어로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상상력의 전이도 눈부시다. 언어를 절제하고 서술을 줄이는 방법만 익히면 뛰어난 시인이 될 것이다. 김우진의 작품 역시 점착력 있는 감각의 연쇄로 독특한 시상을 표현했다. 그 감각의 회오리가 든든한 사유의 논리를 갖춘다면 적공의 탁월한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기랑의 작품은 가장 젊은 어법과 형식을 보여주었다. 상상력의 탄력이 격랑처럼 출렁인다. 구슬을 꿰는 논리의 축을 확보하기만 하면 매우 뛰어난 시인이 될 것이다.

   김도언은 서사의 핵을 바탕에 두고 시상을 전개하는데 그 운용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작품의 표면에는 서사의 틀이 노출되지 않고 서정의 윤기가 짙게 드러난다. 무한의 신비가 내장된 것 같은 시어 하나하나는 생의 슬픔과 기쁨을 복합적으로 드러낸다. 다층적 감성이 서사의 논리로 통합되는 그의 시법은 한국시에서 보기 드문 자리에 놓인다. 이 독자적 개성을 높이 사서 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천거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최종심에 오른 다른 후보자들에게도 아쉬움이 담긴 축하를 보낸다.

 

   _이숭원(문학평론가, 서울여대 교수)

 

 

 

  서사, 감각, 사유로 잘 벼려진 알레고리

 

 

   본심에 오른 스물네 분의 시들은 본심에 오른 작품답게 각자의 개성과 시적 완성도를 잘 견지하고 있었다. 물론 신인상 응모작품답게 그럴 듯한 비유와 이미지들을 모아 놓은 외화내빈의 시들, 외래어나 외국어를 비롯해 자극적인 몇몇 시어에 21세기 일상을 우겨 넣으려는 시들, 전형적 서정성과 시형식을 답습하고 있는 너무 오래 만진 듯한 시들 또한 없지는 않았다. 최종적으로 「스탕달신드롬」외 9편, 「K의 장애」외 14편, 「청암사」외 9편, 「막도장」 외 9편이 남았다.

   「K의 장애」외 14편을 당선작으로 낙점하는 일은 심사위원들 간의 이견 없이 단숨에 이루어졌다. 시적 개성과 군더더기 없는 시적 짜임새와 전개는 단연 돋보였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당신」이라는 시는, 일상적이고 통속적인 제목처럼, 모진 사랑과 삶의 이력을 낯익은 시어들로 조간조간 풀어내는 시다. 그러나 그 뒤로 감추고 있는 시적 의미는 칼날처럼 차갑고 늪처럼 깊다. 「레비스트로스의 청바지」에서는 탁월한 언어 감각을 지렛대 삼아 고대와 현대, 유인원과 신인류, 상상과 사유를 넘나드는 시적 구조와 지적인 통찰이 빛을 발한다. 아이러니컬한 언어감각이 돋보이는 「스티븐슨의 아침」, 절제된 서정이 돋보이는 「그리고 너는」, 집요한 관찰과 묘사가 돋보이는 「K의 장애」를 읽는 일도 즐겁다. 그러나 시적 완결이든 반전이든 해소든, 시적 긴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시적 근기가 더욱 보강되었으면 한다. 특히 서사, 감각, 사유의 트라이앵글 안에서 잘 벼려진 알레고리적 장치는 그의 시의 장점이자 시적 가능성으로 기대된다. 이 개성적인 발성에서 21세기 우리시의 미래를 엿보고자 한다면 지나친 앞섬일까.

   「스탕달신드롬」외 9편들이 보여준 화사한 감각과 묘사, 「막도장」 외 9편에서 보여준 일상적 감각과 시적 통찰,「청암사」외 9편이 보여주는 진솔하면서도 애련한 서정성 등을 읽는 일 또한 즐거웠다. 그러나 지나치게 잘 다듬어진 서정과 비유가 역설적으로 시적 개성 혹은 새로움을 삭감시키고 있다는 점, 간혹 불필요한 설명적 개입이나 작품들 간의 편차 등은 아쉬운 부분임을 밝혀둔다.

 

   _정끝별(시인,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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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시인세계》본심에 오른 24명의 작품들

 

 

강신우 「지하철」외 9편

고태관 「최후의 일요일에 만드는 애플파이」외 9편

기랑(심민정) 「스탕달신드롬」

김도언 「당신」외 14편

김리유(김현희) 「싱싱한 죽음」외 9편

김우진 「막도장」외 9편

달(문성훈) 「문장의 탄생」외 9편

민슬기 「뫼비우스의 손톱」외 9편

박길숙 「손잡이가 없는 문」외 10편

박영수 「달 착륙법」외 9편

박은영 「칼라하리」외 9편

박환희 「감시카메라」외 9편

손상호 「청암사」외 9편

안영후 「어떤 각성의 방식」외 9편

유성애 「마트로쉬카」외 9편

이광욱 「음각」외 11편

이동호 「원만이 아저씨」외 9편

이동화 「호모오피스쿠스」외 21편

이어진(이혜순) 「코끼리 피아니스트」외 19편

이원복 「골판지 상자 속의 동네」외 9편

이정훈 「근황」 외 10편

이현옥 「만나 중독」외 9편

정종효 「공중의 추」외 9편

정진용 「신 민간어원 1」외 11편

 

 

   —《시인세계》2012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