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재미있는 우리말 - 양복집 주인은 양복장이 / 양복집 단골손님은 양복쟁이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2. 14. 10:27
728x90

 
갓장이 헌 갓 쓰고 무당 남 빌려 굿하고
구두장이 셋이 모이면 제갈량보다 낫다


첫째는 '제가 제 것을 만들어 가지지 못하고 제가 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킬 때 쓰는 속담이고, 둘째는 '여러 사람의 지혜가 어떤 뛰어난 한 사람의 지혜보다 나을 수 있음'을 가리키는 속담인데요. 여기에 쓰인 '갓장이, 구두장이'를 흔히 '갓쟁이, 구두쟁이'로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장이'와 '-쟁이'는 어떻게 구분할까요? 먼저 '-장이'는 '어떤 기술, 특히 수공업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접미사입니다. '간판장이, 갓장이, 구두장이, 땜장이, 양복장이, 옹기장이, 유기장이, 칠장이' 등은 모두 수공업적인 기술자를 뜻하는 말이므로 '~장이'로 써야 하는 것이지요.


추석이 가까울 무렵이면 주렁주렁 매달린 콩에 알이 통통하게 밴다. 개구쟁이들은 그것을 뿌리째 뽑아 와 사람의 왕래가 없는 언덕의 큰 바위 뒤에서 그슬어 먹는 것이다. <한무숙, 만남>
난쟁이의 키는 두 여자의 어깨 밑까지밖에 안 찼다. <조세희, 칼날>

반면에 '-쟁이'는 '어떤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접미사입니다. '개구쟁이, 거짓말쟁이, 겁쟁이, 고집쟁이, 난쟁이, 무식쟁이, 수다쟁이, 양복쟁이, 욕심쟁이' 등은 모두 이러저러한 속성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이므로 '~쟁이'로 써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쟁이'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글쟁이'와 '그림쟁이'는 각각 '작가'와 '화가'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지요. '가게쟁이'와 '월급쟁이'도 각각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과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 곧잘 쓰는 말이랍니다.
그런데 혹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장이'의 예에는 '양복장이'가 있고, '~쟁이'의 예에는 '양복쟁이'가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귀에 연필을 낀 젊은 양복장이는 권척을 들고 빙그레 웃으면서······. <이광수, 흙>
사무실에는 양복쟁이 오륙 인이 책상 앞에 둘러앉았다. <이기영, 고향>

'양복장이'는 '양복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양복쟁이'는 '양복을 즐겨 입는 사람' 또는 '양복을 입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두 낱말은 뜻을 잘 구분해서 쓰시면 됩니다.
그럼, '점장이'와 '점쟁이' 중에서는 뭐가 맞을까요?


그는 다만 앞일을 예언할 뿐 점쟁이관상쟁이가 액막이를 처방하듯 그것을 피해 낼 방법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 <이청준, 예언자>

언뜻 보면 일종의 직업이기도 하고 기술자를 가리키는 말인 것도 같으니까 '점장이'로 써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답은 '점쟁이'입니다. 어떤 물건을 만들고, 고치고, 가공하는 등의 수공업적인 기술이 필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상을 보고 점을 치는 사람도 역시 '관상쟁이'라 해야겠지요.

고기가 먹고 싶으면 차돌박이를 시키고 생선이 먹고 싶으면 알배기를 시켜라.

'-장이/-쟁이'처럼 '-박이/-배기'도 뜻을 잘 살펴 구분해서 써야 하는 말입니다. '소의 양지머리뼈의 한복판에 붙은 기름진 고기로서 빛이 희고 단단한 것'을 가리킬 때 흔히 '차돌배기' 또는 '차돌바기'라고들 하지만, 정답은 '차돌박이'입니다. 차돌 같은 것이 박혀 있는 것 같다 해서 '차돌박이'라 하는 것이지요. 점이 박혀 있는 것 같다 해서 '점박이'라 하고, 오이에 소를 넣은 김치라 해서 '오이소박이'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기에 쓰인 '-박이'는 '무엇이 박혀 있는 사람이나 짐승 또는 물건'을 가리킬 때 쓰는 접미사입니다.
그럼 '-배기'는 어떤 경우에 쓰는 말일까요? '한 살배기, 열 살배기'처럼 '그만큼의 나이를 먹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리킬 때 쓰는데 '일흔 살배기, 여든 살배기'처럼은 잘 안 쓰이는 것으로 보아 주로 어린 사람에게만 쓰는 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배기, 알배기'처럼 '그것이 꽉 들어차 있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고, '공짜배기, 진짜배기'처럼 '그와 같은 성질을 가진 물건'을 가리킬 때에도 '-배기'를 씁니다.
참고로 '-빼기'라는 접미사도 있는데요. '곱빼기, 밥빼기, 악착빼기, 앍둑빼기, 외줄빼기, 코빼기' 같은 말에서는 '-배기'가 아닌 '-빼기'를 쓴다는 점도 함께 알아 두세요.
글_ 노시훈
노시훈
고려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박물관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며 전시 문안 작성을 지도하고 있다. 국내외 박물관을 견학하다 자연스럽게 답사의 매력에 빠져 현재는 테마기행 블로그와 카페 '산 너머 살구'를 운영하며 이야기가 있는 여행지를 찾아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