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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우리말 - 남겨진 미련은 있지만 / 담겨진 장미는 없다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2. 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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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미련도 없지만 모두 네가 가져 버려! <김현정 노래, 그녀와의 이별>
그대의 두 손에
담겨진 빨간 장미가 함께 웃네요. <신인수 노래, 장미의 미소>


'남겨진'과 '담겨진'. '남겨진'은 맞지만 '담겨진'은 틀렸습니다. 정답 풀이는 뒤에서 하기로 하고 먼저 이 두 낱말의 옳고 그름을 가른 '이중 피동'이 무엇인지 알아볼까요?

김 교수의 눈에 강의실로 들어서는 노인이 보였다.
나는 왠지 그 휘파람 소리가 무척 야비하게
느껴졌다.


주어가 스스로 움직이거나 작용하는 경우를 '능동'이라고 하고, 주어가 남에게서 어떤 행동을 당하는 경우를 '피동'이라고 합니다. 우리말에는 피동을 나타내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피동의 접미사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보이다, 잡히다, 팔리다, 쫓기다' 등에 쓰인 '-이-, -히-, -리-, -기-' 따위가 바로 피동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들입니다. 다음으로, '-어지다'를 붙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만들다, 이루다, 늦추다, 느끼다' 등과 비교하면 '만들어지다, 이루어지다, 늦추어지다, 느껴지다' 등에 피동의 뜻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한데 섞으면 안 됩니다. 이미 피동의 뜻이 담긴 '보이다'에 또다시 피동의 뜻을 더하는 '-어지다'를 붙여서 '보여지다'와 같이 쓰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부르다'의 피동사는 '불리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우-'를 덧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어지다'를 덧붙여 '불려지다'로 쓰는 것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신이라 불린 사나이'로 쓰면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피동사에 쓸데없이 피동의 뜻을 더하는 경우를 가리켜 흔히 '이중 피동'이라고 하는데, 둘러보면 이렇게 잘못 쓰이는 사례가 의외로 많습니다.

나뉘어지다, 놓여지다, 담겨지다, 덮여지다, 바뀌어지다, 부딪혀지다, 쌓여지다, 쓰여지다, 읽혀지다, 잊혀지다, 적혀지다

이걸 제대로 고쳐 적으면 아래와 같습니다.

나뉘다/나누어지다, 놓이다/놓아지다, 담기다, 덮이다/덮어지다, 바뀌다/바꾸어지다, 부딪히다, 쌓이다/쌓아지다, 쓰이다/써지다, 읽히다/읽어지다, 잊히다/잊어지다, 적히다/적어지다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위의 문장은 가수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의 한 구절입니다. 워낙 널리 알려진 유행가이다 보니 '잊혀지다'가 맞는 말인가 보다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잊혀야 하는 건가요, 잊힌 계절'과 같이 써야 옳습니다. 가수 우순실이 1988년에 발표한 노래의 가사에는 반갑게도 '잊히다'가 나옵니다.

날 사랑한단 그 말 한 마디 잊히질 않아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이 노래의 제목은 '잊혀지지 않아요'입니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의식적으로 바르게 쓰려 했다기보다는 단지 노래의 운율을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래로도 유명한, 정지용의 시 '향수'의 한 구절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와 대비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남겨진'과 '담겨진'의 정답을 풀이해 보겠습니다. 이미 설명했다시피 '담겨지다'는 '담다'의 피동사 '담기다'에 다시 '-어지다'가 붙은 꼴이므로 잘못입니다. 하지만 '남기다'는 '남다'의 피동사가 아니라 사동사입니다. 남에게 그 행동이나 동작을 하게 함을 나타내는 동사를 사동사라고 하는데, 여기에 '-어지다'가 붙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아래에 보인 예들은 사동사에 '-어지다'가 붙어 쓰인 것들입니다. 당연히 이들은 문법적으로 틀린 것이 없는 표현들입니다.
글_ 노시훈
노시훈
고려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박물관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며 전시 문안 작성을 지도하고 있다. 국내외 박물관을 견학하다 자연스럽게 답사의 매력에 빠져 현재는 테마기행 블로그와 카페 '산 너머 살구'를 운영하며 이야기가 있는 여행지를 찾아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