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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조동범
비는 4년 11개월 이틀 동안 계속해서 내렸다.*
치욕은 사라졌고 일상은 무심했다.
휴일 오전의 태양은 무미건조한 주일을 향해 타오른다. 사라
진 신과 매트릭스로부터
그 어떤 전언도 들리지 않는다. 허구는 선명하고
허상은 진실했다.
내세로부터의 전갈은 신뢰할 수 없다고 누군가 중얼거린다.
퇴근길에 만난 매춘부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치정에 얽힌 살인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래도록 저물지 않는 태양을 향해 늙은 개 한 마리가 창백
하게 뒤를 돌아본다.
지평선의 끝으로부터 기차는 도래하고
오래된 여관의 간판은 소멸을 예비한다. 도시의 불이 모두
꺼지면
비 내리는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사랑은 영원토록 이루어
지지 않는다.
교회의 십자가는 붉게 물들고 지하 창고에선 썩은 돼지고기
가 더러운 식욕을 뒤적인다. 지루한 날들이었다고
세계는 증언한다.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는 참혹한 음역을 향해 사라지고,
이윽고
세계는 멸망에 이르지 못한다.
*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
-계간『포엠포엠』(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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