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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 조동범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2. 1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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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조동범


 

  비는 4년 11개월 이틀 동안 계속해서 내렸다.*

  치욕은 사라졌고 일상은 무심했다.

  휴일 오전의 태양은 무미건조한 주일을 향해 타오른다. 사라
진 신과 매트릭스로부터

  그 어떤 전언도 들리지 않는다. 허구는 선명하고

  허상은 진실했다.

  내세로부터의 전갈은 신뢰할 수 없다고 누군가 중얼거린다.
퇴근길에 만난 매춘부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치정에 얽힌 살인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래도록 저물지 않는 태양을 향해 늙은 개 한 마리가 창백
하게 뒤를 돌아본다.

  지평선의 끝으로부터 기차는 도래하고

  오래된 여관의 간판은 소멸을 예비한다. 도시의 불이 모두
꺼지면

  비 내리는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사랑은 영원토록 이루어
지지 않는다.

  교회의 십자가는 붉게 물들고 지하 창고에선 썩은 돼지고기
가 더러운 식욕을 뒤적인다. 지루한 날들이었다고

  세계는 증언한다.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는 참혹한 음역을 향해 사라지고,

  이윽고

  세계는 멸망에 이르지 못한다.

 

 

  *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

 

 


-계간『포엠포엠』(2012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