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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우리말 - '삼가해'라는 말은 삼가주세요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2. 2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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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원이 아닌 분은 사용을 삼가해 주세요.
공공장소에서는 음주와 흡연을 삼가합시다.
자정 이후에는 건물 출입을 삼가하도록 하십시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나 관공서에 가면 '삼가해 주세요, 삼가합시다, 삼가하도록' 등과 같은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삼가하다'는 틀린 말입니다.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또는 '꺼리는 마음으로 양이나 횟수가 지나치지 않도록 하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은 '삼가다'입니다. 그러니까 '삼가해 주세요, 삼가합시다, 삼가하도록' 등은 각각 '삼가 주세요, 삼갑시다, 삼가도록' 등으로 고쳐 써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바로 적은 경우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무단출입이나 음주, 흡연에 앞서 정작 '삼가야' 할 것은 이와 같은 잘못된 표현들이라 하겠습니다.

어른 앞에서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외출을 삼가고 나는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렸는데······. <이동하, 장난감 도시>
아직까지는 그런 문제에까지 반감을 노출시키는 만용은 삼가는 게 좋을 것이며······. <김주영, 마군 우화>

'삼가다'를 '삼가하다'로 잘못 쓰게 된 것은 아마도 아래 예문에 나오는 부사 '삼가'에 '-하다'가 붙어서 된 말로 착각한 데서 빚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소인은 삼가 만나 뵈옵고 싸우지 않고 화친을 의논하려 하옵니다. <박종화, 임진왜란>

하지만 '삼가'는 위의 예문에서 보듯이 '겸손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의 뜻으로 쓰이는 부사어이고, 여기에는 어법상 '-하다'가 붙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삼가하다'는 그저 없는 말인 것이 아니라 어법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10년 뒤 찾은 고향은 모습 그대로였다.
낮에 받은 자극으로 그날 밤늦도록 기억들을 더듬던 그는 마침내 오래 잊고 있었던 사리원을 찾아냈다.
<이문열, 영웅시대>

꼼꼼한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이 바위에는 예부터 괴이한 전설이 하나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할머니께서는 항상 예스럽게 한복을 차려입고 다니신다.

이와 유사한 예로 '예부터, 예스럽다'가 있습니다. 흔히 '옛부터, 옛스럽다' 등으로 쓰곤 하지요. 그런데 조사 '부터'나 접미사 '-스럽다' 앞에는 항상 명사만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은 관형사입니다. 관형사란 뒤에 나오는 명사를 꾸며 주는 역할을 하는 품사를 말합니다. 즉, '옛'은 '옛 모습, 옛 기억' 등에서 보듯이 뒤에 나오는 명사를 꾸며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관형사로 처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사와만 어울리는 '부터'나 '-스럽다' 앞에 관형사인 '옛'을 두는 것은 어법상 잘못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예스럽다'가 바른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글_ 노시훈
노시훈
고려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박물관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며 전시 문안 작성을 지도하고 있다. 국내외 박물관을 견학하다 자연스럽게 답사의 매력에 빠져 현재는 테마기행 블로그와 카페 '산 너머 살구'를 운영하며 이야기가 있는 여행지를 찾아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