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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우리 속담 ③ 사랑으로 가득한 풍요로운 마음 갖기 / 꽃 본 나비 불을 헤아리랴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4. 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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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 잎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는 법인데 꽃을 시샘하는 바람은 왜 이리도 끈질긴 걸까요? 이른 봄 꽃잎을 세차게 흔드는 바람은 꽃의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걸까요, 꽃을 찾는 나비의 마음을 시샘하는 걸까요?

'꽃 본 나비, 물 본 기러기'라는 말이 있듯이, 꽃을 본 나비는 물을 만난 기러기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법입니다. 오죽하면 '꽃 본 나비 불을 헤아리랴'라는 말이 있을까요? 꽃을 본 나비는 그곳이 불속인지 물속인지 가리지 않고 뛰어들 만큼 열정에 온몸을 불사른다는 뜻이겠지요. 그것이 사랑의 마음이고 봄의 마음이며, 청춘의 마음입니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했던가요? 시샘에 몸이 달아 안달 나게 만드는 것은 꽃의 아름다움보다도 나비의 마음을 가진 꽃의 사랑입니다. 어쩌면 꽃이 아름다운 것은 불구덩이 속이라도 꽃을 찾아 달려드는 나비의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랑받는 이의 얼굴만큼 어여쁜 것이 또 있을까요? 삼월의 봄바람이 한사코 가녀린 꽃잎을 흔들며 나비의 마음을 얻은 꽃을 시샘하는 것은 꽃이 얻은 그 마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주린 마음, 그것이 꽃샘추위의 매서움입니다. 배가 고프나 사랑이 고프나 굶주리긴 매한가지, 안달 나기도 매한가지입니다. 때로는 밥보다 더 주린 것이 사랑이고 마음이고 관심이지요.

주변을 둘러보세요. 꽃샘추위보다 더 매섭게 화가 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유 없이 까탈을 부리는 사람, 공연히 나를 몰아세우는 사람, 불쑥불쑥 화를 내는 사람,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사람은 모두 마음이 고프고 사랑이 고파 시샘에 안달 난 사람들입니다. 권위를 앞세워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 힘으로 약자를 누르려는 사람, 명성을 내세워 허세를 부리는 사람, 무슨 일이든지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모두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고 사랑은 갖지 못해 마음이 모난 사람들이지요.
춘향이를 안고 어르며 부르는 <사랑가>에서 이 도령은 '너는 죽어 꽃이 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어' 천년만년 사랑을 이어 가자고 속삭입니다. 죽어서도 이어 갈 사랑의 마음을 갖는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 든든할 겁니다. 때로는 금은보화를 얻는 것보다 더 큰 자산이 됩니다. 마음만큼 크고 중한 것이 있을까요?

사랑받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내가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온전히 나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느낌, 그 자신감이 새로운 활력이 되고 삶의 에너지가 되지요. 반대로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합니다. 내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어디서나 움츠러들고 무슨 일이든 자신이 없을 겁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에 누구와 있든지 항상 혼자 애를 쓰면서 사랑받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래서 늘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겠지요.

사랑에 고픈 마음이 이처럼 가난할진대 사람들의 마음을 굶주리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세상에 화가 줄어들기를 바란다면 사람들이 사랑에 고프지 않게 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 한국은 누구보다 사랑에 목마른 봄날의 사람들, 젊은 청춘들을 사랑에 고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삼포세대'라던가요?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요즘 세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어 포기하는 것이지요. 취업을 준비하느라 바빠서, 스펙을 쌓느라 겨를이 없어서, 돈과 집과 차가 없어서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출산도 못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세상이길래 사람들을 마음에 굶주리게 만드는 걸까요? 더구나 봄을 맞은 꽃과 나비를 말입니다. 이건 꽃을 시샘하는 바람보다 더한 심술이 아닐까요? 지금이 어느 땐데 사랑타령이냐고요? 사랑타령이냐고요? 어느 때나 좋고 어느 때나 필요한 꽃노래입니다.
     

글_김영희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구비 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비극적 구전 서사의 연행과 '여성의 죄'>, <한국 구전 서사 속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신경증 탐색>, <한국 구전 서사 속 '부친살해' 모티프의 역방향 변용 탐색> 등의 논문과 <구전 이야기의 현장>, <숲골마을의 구전 문화>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