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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우리말 - 오실게요? / 오십시오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4. 1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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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실게요? 오십시오. 요청하는 말 바르게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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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이나 병원 같은 데에 손님으로 가서 앉아 있으면 '오실게요' 같은 표현을 종종 듣게 됩니다.
바른 표현일까요? 오늘은 존대와 공손의 표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① 손님, 이쪽으로 오실게요.
② 환자분, 돌아누워 보실게요.

 

직원이 손님에게 어떤 행동을 할 것을 요청할 때 '~실게요'와 같은 말을 사용하곤 하는데, 사실 찬찬히 따져 보면 이 말은 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주체를 높이는 뜻이 있는 '-시-'와 어떤 행동을 할 것을 약속하는 뜻이 있는 '-ㄹ게'는 논리적으로 함께 쓰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③ 지금은 바쁘니까,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
④ 지금은 바쁘니까, 네가 나중에 연락할게. ×

 

'-ㄹ게'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을 약속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말하는 이는 말하는 이 자신의 행동만 약속할 수 있지, 듣는 이나 다른 사람의 행동을 약속할 수는 없지요. 즉 어미 '-ㄹ게'를 쓰려면 항상 그 행위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락의 주체가 '나', 곧 말하는 사람인 ③번은 올바른 문장이지만 연락의 주체가 '너', 곧 듣는 사람인 ④번은 비문인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나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셨다. ×

 

이번엔 '-시-'를 살펴볼까요? 위에서 보듯이 '-시-'는 어떤 행동의 주체를 높일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사람이 행동의 주체일 때에는 '-시-'가 쓰이지 않는 것이지요. 자기가 스스로를 높이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이것이 ⑤번과 ⑥번의 적격성이 나뉜 이유입니다.

 

자, 이제 ①, ②번 문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눈치채셨나요? '~실게요'는 윗사람, 곧 다른 사람이 행동의 주체일 때에만 쓸 수 있는 '-시-'와 나, 곧 자기 자신이 행동의 주체일 때에만 쓸 수 있는 '-ㄹ게'가 함께 쓰였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표현인 것이지요. 이 말은 아마도 존대해야 할 손님에게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명령하는 듯한 말투를 쓰기가 송구스러워 좀 더 상냥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어진 표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논리가 닿지 않으면 뜻이 통하지 않게 되고 결국 그 마음도 제대로 전할 수 없습니다.

 

⑦ 손님, 이쪽으로 오십시오/오시겠습니까.
⑧ 환자분, 돌아누워 보십시오/보시겠습니까.

 

흔히 식당에서 점원이 손님에게 "어서 오십시오."라고 하듯이 '~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행동을 요구하는 뜻이 강해서 상황에 따라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시겠습니까'와 같이 묻는 형식을 취하면 좋습니다. 상대방의 의향을 묻는다는 점에서 더 공손한 말투로 여겨지기 때문이지요.

 

존대나 공손의 표현은 말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 잊지 마세요.

 


 

글_강연민
고려대학교에서 음운·음성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 국어생활종합상담실에서 국어 관련 누리소통망트위터 민원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