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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의 연서
함민복
까마귀산에 그녀가 산다
비는 내리고 까마귀산자락에서 서성거렸다
백번 그녀를 만나고 한번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였다
예술의 전당에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고
먼저 전화를 걸던 사람이
그래도 당신
검은 빗방울이 머리통을 두드리고
내부로만 점층법처럼 커지는 소리
당신이 가지고 다니던 가죽가방 그 가죽가방의 주인
어느 동물과의 인연같은 인연이라면
내 당신을 잊겠다는 말을 전하려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독해지는 마음만
까마귀산자락 여인숙으로 들어가
빗소리보다 더 가늘고 슬프게 울었다
모기가 내 눈동자의 피를 빨게 될지라도
내 결코 당신을 잊지 않으리라
그래도 당신
-시집『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비,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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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연에서 띄운 연서
박라연
사랑이라는 미모(美貌)도
그 아픔을 견디어낼 수 있는
나이일 때
값이 쳐지는 것일 텐데
늙어서도 산기를 느낀다면
참 독한 사람의 그것일 텐데
그래, 예외는 있는 것
하늘 가득 색색의 등이 켜지는 이곳
강도 산도 언덕도 사람도
제 몫의 근심들
죄다 누구 품에 맡겼을까
꽁지발 들고 두 손 높이 들면
하늘 문고리가 닿을 것 같은
혀 대신 심장이 말을 하는 어라연!
너의 문(門)만은 사랑을 돌로 쳐
기절시킨 심장으로 나서기가
싫다
-시집『우주 돌아가셨다』(램덤하우스중앙,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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