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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의 소유권 / 차주일 - 그늘의 소유권 / 김선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4. 2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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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의 소유권
 

  차주일
 

 

  밤 11시 넘어 반지하 철문을 연다. 보증금 천에 월세 사십의 집주인
은 냄새다. 11년째 바뀐 적 없는 이 집의 주인이 되어보려고 미장이
며 방수 전문가까지 불러 봤으나, 냄새는 도무지 소유권을 넘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냄새는 두 딸과 아들과 아내와 나를 여지없이 불러들
였다


 다섯은 골방에 틀어박혀 서로에게 자유를 배려했다. 이곳에서는 늘
같은 일만 반복되므로, 대화 따위로 서로 시간을 빼앗지 않았다.


 둘째가 개인 수건 일곱 장을 달라며 투덜거렸다. 레인보우하이펠리
스에 사는 친구를 따라가 층운이 다른 구름냄새를 묻혀온 날 이었다.


 첫째가 그 구름을 찾아 나섰다. 남아 있는 넷이 며칠간 불안해한 것
은 평소와 다른 냄새 때문이었다.


 가출에서 돌아온 첫째가 수건에 얼굴을 묻고 질기게도 울었다. 수건
한 장을 같이 사용하던 넷은 믿었다. 첫째가 돌아온 이유가 수건 냄
새 때문이라고.


 다시 다섯의 얼굴 냄새를 발효하는 수건 한 장이 깃발처럼 걸렸다.
집안은 예전처럼 지워지지 않는 냄새로 평화로워졌다. 다섯이란 말이
우리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월간『현대시학』(2008년 9월호)
-시집『냄새의 소유권』(천년의시작.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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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소유권

 
김선호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늘을 만든다

꽃잎은 열매를 떨군 통증이 만든 얇은 그늘이고

돌은 어둠이 밤마다 찾아오는 외로움을

조금씩 뭉쳐 만든 그늘이다

그늘이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그늘을 갉아먹는다
 

손부채로 얼굴에 그늘을 만들고

길을 나서다가 보았다

100년 수령의 느티나무 그늘을

순간 삼키던 허공.

바람이 수시로 들어올리던

해수욕장에서 빌린 그늘막처럼

그늘의 경계는 허술했다
 

내 속에 심어놓은 그늘의 뿌리는

가늘고 얕아서 종일 일렁인다

소유권을 가진 자가

빠른 속도로 거두어들이면

거울에 비친 내 몸처럼

감출 곳이 없다

 

 


-계간『문학과 창작』(2012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