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차리며
문숙
어느 문학상시상식에 가서 축하 반 부러움 반을 섞어 박수 치다가
상복 없는 시인들끼리 모여 서로서로 시 좋다고 칭찬하다가
문학상은 못 받아도 밥상은 받고 산다는 한 시인 농담에 웃어주다가
밥상이 문학상보다는 수천 배는 값진 것이라고 맞장구치다가
밥은 없고 술만 있는 자리에서 헛배만 채우다가
집에 와서 식구들의 밥상 차린다
일생 가장 많이 한 일이 나 아닌 너를 위해 밥상 차린 일임을 생각하다가
오나가나 들러리밖에 안 되는 신세에 물음을 가져보다가
훌륭한 걸 따지자면 상 받는 일보다 상 차리는 일이라 생각하다가
그래도 한 번쯤 상이든 밥상이든 받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다가
이런 마음이 내가 나를 들러리로 만드는 것이라 반성하다가
이번 생은 그냥 보험만 들다가 가겠구나 생각하다가
밤새도록 나를 쥐었다 놓았다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가
-월간『유심』(201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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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리 시인에게
이화은
영국 윌리엄 왕자의 세기적인 결혼식에 들러리를 섰던 왕세자빈의 여동생「피파미들튼」의 뒤태가 너무 아름답다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하고 있다는데
선배시인들의 시상식이다 출판기념회다 꽁지에 불붙은 들짐승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박수 치다 보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어떤 시인은 *한 나라에 시인은 세 명이면 족하다고 한다 그 외에는 모두 모국어의 거름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세 명의 시인 외에는 모두 들러리라는 셈인데
들러리가 거름이라면! 모두 다 나무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감나무는 지전 같은 두터운 이파리를 떨어뜨려 스스로 제 거름을 마련할 줄 안다
지금 세계가 들러리를 주목하고 있다
시인이여 들러리 시인들이여 뒤태 고운 시나 쓰며 한 번 잘 썩어 보자 부르튼 모국의 입술을 적셔 줄 세 명의 시인을 위해 꽁지 빠지게 박수 한 번 제대로 쳐보자
*한우진 시인의 시에서
-계간『다층』(2011,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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