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주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한 <한국문학선집>에 수록된 시 4편)
섬진강 24
―맑은 날
김용택
할머님은 아흔네 해 동안 짊어진 짐을 부리고 허리를 펴 이 마을에 풀어놨던 숨결을 구석구석 다 거둬들였다가 다시 길게 이 작은 강변 마을에 골고루 풀었습니다.
할머님이 살아생전 밤낮으로 보시던 할머니 나이보다 더 늙고 할머니 일생보다도 더 만고풍상을 겪어낸 뒷산 귀목나무.
"올해는 바람이 없을랑갑다
까치집을 높은 데 진 걸 봉께로."
"올해는 농사일이 바쁘겄구나
나뭇잎이 한꺼번에 핑 걸 봉께로."
할머님이 숨을 모두 거두어들여 맺었다가 마지막으로 길게 풀었을 때 가장 낮아진 새벽 물소리와 그 귀목나무 죽은 삭정이 가지 몇 개가 바람 없이 부러져 떨어지는 소리를 나는 식구들의 울음소리 속에서 들었습니다.
할머님이,
강 건너에서
강 이쪽으로
도롱곶 논밭에서
텃논 텃밭으로
텃논에서 마을회관으로
회관에서 이웃집으로
이웃집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방으로
점점 그 모습이 사라지신 후에도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이웃 강 건너 마을로 시집 간 딸이 해마다 하얀해지는 머리로 강길을 따라 왔다가
찔레꽃 피고
깨꽃이 피고
쑥국새가 울어쌌고
혹은 눈 나리던
저문 강길 풀숲을 헤치며 왔다가
돌아갈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할머님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알고는
"참 오래 살기도 허신다인......"
"인자 죽을 때도 되았제" 하다가
금방 또 할머님을 잊어버리고 허던 일들을 했습니다. 그러시기를 여러 해, 온몸에 죽음꽃이 번져가고 움푹 패여 가는 볼로 할머님은 "내가 왜 죽어, 이렇게 멀쩡헌디. 나는 더 살고 따땃헌 춘삼월에 날 좋은 날 죽을란다."
또 그렇게 보낸 몇 해 봄을 언제 죽을려고 했었냐는 듯 참으로 말짱하게 살아나시곤 하셨지만 할머님은 죽을 때를 향해 자연스럽게 삶의 어느 끝에서부터 차근차근 죽음으로 자기를 이끌어가셨습니다. 뒷산 귀목나무처럼.
할머님은 이따끔 방문을 열고 마루에 앉은 나더러 여러가지 이야기 끝에마다 "내가 죽으면
"내 간을 꺼내 보거라
내 간이 있는가 다 녹아부렀는가."
할머님이 살아오신 저 배고픔과 한숨과 시달림과 빼앗김, 저 눈물 많은 세상 세월도 이제 밥 먹을 일 외엔 일을 다 빼앗겨버리고 죽음의 근처에 다다라가시며 할머님은 죽음의 한 고비를 넘어설 때마다 그렇게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할머님의 때절은 저고리가 지붕 위로 던져지고 새벽 어둠이 서서히 문짝 없는 대문을 빠져나가 아침 강물로 가서 젖어 흘러가고, 딸네들이 허연 파뿌리 같은 머리채를 풀어헤치고 신발을 벗어 들고 마을 앞 느티나무에서부터곡성을 터뜨리며 새벽빛을 따라 초상마당에 들어서며 어매 어매 불쌍헌 우리 어매를 불렀습니다.
저 깊고 끝 모를 우리들 한의 세월
황토땅 깊이 푸른 불꽃이 타오르고
할머님은 빤듯이 누워
돌덩이처럼 차고 캄캄하게 식어갔습니다.
느닷없는 곡성과 울음소리들을 따라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아침 연기를 곧게 하늘로 올리며 마을을 깨우고 헛간 구석에 남은 어둠까지 모두 태우며 할머님의 죽음을 숨김없이 드러내주는 맑디맑은 봄볕이 우리들 가난한 마당에 쏟아져 깔렸습니다.
살구꽃 그늘이 마당에 떨어지고
앵두꽃 그늘이 뒤안 우물에 드리워지고
아이들은 돌멩이를
강물에 던져
물결을 일으키며
강가에 놀고 있었습니다.
차일이 쳐지고
그 동안 몇번 키웠다 잡아먹고
다시 키워논
할머님 초상용 돼지를 잡아
내장을 삶아 먹고
술들이 거나해지자
초상마당은 할머니 죽음과 상관없이
활기를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은 시키지 않아도
모여들어 무슨 일이든지
척척 손과 발이 안암팎으로 맞아떨어져
익숙하게 일들을 추렸습니다.
객지에서 하나둘 손주들이 돌아올 때마다 잠깐씩 울음소리들이 뒤산을 가만가만히 울렸습니다. 마을은 오랜만에 사람 사는 동네처럼 시끄러워지고 큰아버지 큰어머니 할머니만 사시던 큰집에도 오랜만에 사람 사는 집처럼 굴뚝마다 연기가 나고 방들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런 풍경들은 할머님의 죽음과 별 상관 없이 펄펄했고 또 평화스럽고 때로 아늑하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이따끔씩 병풍 뒤에 가서
하얀 이불 홑청을 떠들고
밭고랑같이 주름진
할머님의 얼굴을 보곤 했습니다.
밖의 소란과 죽음의 조용함으로 서로 하루 해가 맘껏 길게 지고 산그늘이 뒷산을 내려오자 느티나무 까치집 그림자가 마당에 떨어졌다가 조용히 마당을 떠나 앞산을 넘어갔습니다. 마당엔 생솔나무 모닥불을 피워 뒷산 까치집높이에서 연기를 풀었습니다. 산그늘이 마을을 빠져 나가고 어둠이 뒷산길을 따라 내려와 마을을 덮자 타오르는 불빛이 뒷산을 훤하게 비췄습니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뒷산에서 너울너울 거리고 불길에 빨갛게 치솟아 올라간 불티는 어디까지 갔다가 오는지 하얀 재로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아 삭아 없어지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불가에 쭈그려 앉아 연기를 피해가며 자기 어머니들이 얻어다 준 떡이나 고기를 먹으며 쓸 데 없이 불을 뒤적거려 자꾸자꾸 불티를 하늘로 높이 올리며 불티가 올라가는 하늘을 쳐다보곤 했습니다. 사람들 얼굴에 불빛이 비칠 때마다 얼굴은 각양각색의 탈을 쓴 것처럼 보였습니다. 탈들은 여러가지 표정으로 죽음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뭔지 잘 모르는
어린 손녀딸 하나가
하얀 상복을 입고 불가에 서서
불티가 올라가는
캄캄한 하늘을
오래오래 쳐다보다가
어둠에 젖은 별들을 보다가
하얀 상복 치마에
불티를 받고 서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막둥이 아들이 오자 입관을 서둘렀습니다. 아들딸과 손자 고손자들로 방은 오랜만에 발 디딜 곳 없이 꽉 찼습니다. (아, 몇해 전까지만 해도 할머님 생신이나 할아버지 제사 때만 되어도 형제들로 인하여 방마다, 마루까지 꽉 차 밥과 떡을 나눠 먹던 그 시끄럽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떡 한 조각씩 먹으며 우리들은 학교를 가곤했었습니다.) 관 속에 할머님은 편안히 눕혀지고 헌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관 속에 넣을 때
헌 옷가들 속에서
마른 거름가루
마른 흙가루
마른 솔잎 부스러기들이
벼알이나 보리씨들이
할머님의 메마른 눈물같이 떨어지고
반짝이며 딸랑 무엇이 관 속에 떨어졌습니다.
현금 육십 원,
아, 두꺼운 얼음장이 쩌렁쩌렁 금가는 총성이 들리고
산이 울렸습니다.
동학과 일제와 난리,
앞산 보릿잎들이 부르르 온몸을 떨고
뒷산 귀목나무 삭정이 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강물이 출렁거렸습니다.
아우성 소리가,
총 맞은 할아버지를 뻔히 보면서도
달려가지 못했던
할머님의 부르짖음이
내 귀를 때렸습니다.
꽁꽁 언 강 위의 피 흘리는
할아버지의 시체.
관 두껑을 닫고 할머님의 모습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마을이 터질 듯 울었습니다. 그 울음소리 속에 할머님의 관에 못 치는 소리가 지나갔습니다. 못 치는 소리가 지나가자 머리가 허연 할머님은 울음소리 속을 빠져나가 한 손은 굽은 등에 얹고 한 손으론 지팽이를 짚고 오랜만에 홀가분한 빈 몸으로 바람만 바람만 따라 보리밭 매던 할머니 등 같은 산기슭으로 산기슭으로 오르다, 까치집이랑 동네랑 강물이랑 우리들 집이랑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저 깊고 깊은 산허리 양지쪽 맑은 햇빛 속에 노란 잔디로 덮힌 선산의 무덤들, 육이오 때 총 맞아 죽은 할머님의 남편과 큰아버지, 저지난 해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젊어서 죽은 내 아내와 사촌 동생 용식이, 어려서 죽은 어린 조카들이 선산머리 낙락장송 아래 나와 할머님을 고이 맞아 잔디밭에 나란히들 앉아 맑은 햇빛을 쐬며 저 굽이 돌아가며 부서지는 푸른 봄 강물을 눈이 부시게 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님은 눈이 부시는지 죽음꽃 핀 앙상한 손으로 해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손사래 사이로 빛이, 고운 봄빛이, 새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하루가 가고
하룻밤이 지났습니다.
그렇게 또 돌아온
그 이튿날 밤, 밤이 깊어지자 빈 상여가 마당에 놓여지고 상여꾼들이 달라들어 빈 상여를 어깨에 올렸습니다.
불쌍허네 불쌍허네
수리재떡이 불쌍허네
어어노 어어노 어어노 ......
상여가 서서히 앞뒤로 흔들거리며 상여소리가 구슬프게 울리며 놀이를 시작하자 마당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마당가로 뚤방으로 나가 서고 상주들이 하나씩 허던 일들을 멈추고 상여 뒤를 따라 술 취한 소리로 아이고 할매, 아이고 할매, 불쌍한 우리 할매 하며 우는 시늉들을 내가 시작했습니다. 모닥불은 사람들의 얼굴에 이글이글 붉은 탈들을 각각 씌웠습니다.
여기저기 떠들고 싸우고 고함치며 고달픈 삶과 허허로운 인생과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노름꾼들도 조이던 패를 놓고 마당가에 빙 둘러섰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어린 고손주들은 오랜만에 즐거운 장소를 만난 듯 상여 밑으로 들락거리며, 어머니 상복을 뒤집어쓰며 지팽이를 빼앗아 도망다니고 쫓는 장난을 치고, 마당가에 둘러섰던 사람들 중에서도 울고 싶은 사람은 붉은 탈을 쓰고 상여 뒤를 따라다니며 맘 놓고 아이고오 아이고오 소
리를 찾았습니다. 빈 상여놀이가 벌어질 때마다 술 취해 턱없이 울어대던 정규 아재는 오늘도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가며 울었습니다. 정규 아재가 상여놀이 마당에 뛰어들어 오만 몸짓으로 바락바락 악을 쓰며 울기 시작하자 관은 무르익어, 발을 동동 구르며 허리를 꺾으며 사람들은 눈물을 찔금거리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술만 취하면 아무자리에서나 어깨춤을 추시는 아랫집 큰아버님은 상복과 건을 쓴 채 오늘도 상여를 껑중껑중 둥개둥개 맴돌며 허이!
허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커다란 상여 그림자와 사람들의 그림자가 지붕을 덮고 여기저기 흔들흔들 너울너울거리며 슬픔에 젖어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루, 부엌, 헛간, 담 너머 사람들이 슬픔을 찾아 젖어들어가자 캄캄한 앞산 뒷산이며 마을의 집들이며 나무들이 사람을 따라 너울너울 어노 어노 흔들리며 슬픔의 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싣고 배는 바다로 떠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자기의 슬픔으로 빠져들어 잠겼다가 모두의 서러움으로 합쳐
져 슬픔은 모닥불로 훨훨 붉게 타올랐습니다.
어매 어매 불쌍헌 우리 어매
불쌍허요 불쌍허요
우리 어매가 불쌍허요
인생살이가 불쌍허요
어매 어매 우리 어매
우리 어매가 떠나가네.
목을 놓아 울며 어머님이 상여를 붙잡고 구슬프게 노를 잡아 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담 너머 아낙네들은 코를 팽팽 풀어 치맛자락이나 담벼락에 닦으며 붉은 탈의 얼굴들이 눈물에 젖어 반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의 슬픈 배는 출렁출렁 밤바다로 노를 저어 가며 거칠고 험한 파도를 넘어가다가 다시 잔잔한 바다를 순조롭게 나아가다가, 멀리멀리 저승까지라도 가겠다는 듯이 점점 더 구슬프게 노를 저어 아득히 떠가며 상여소리리만 들렸습니다. 배는 점점 이승과 떨어지며 너울너울 하늘로 떠올랐습니다. 할머님이 저 멀리 하늘에서 하얀 옷을 입고 평소에 굿을 하시던 것처럼 덩실덩실 어머님을 이끌어갔습니다.
배가, 상여놀이 마당을 실은 배가 불티처럼 이승에서 깜박깜박 사라지려 하자,
"아이고 숨 넘어가겄네
나도 인자 고만 울랑만
나만 며누리간디
나 혼자만 울고 있었당게......" 하시며 어머님이 느닷없이 곡을 뚝 그치고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상여와 모든 사람들은 우뚝 딱딱한 땅으로 뚝 떨어져버렸습니다. 사방의 탈들은 슬픔이 딱 그쳐 표정들이 딱 멈춰지더니 한참을 멍해 하다가 와르르 폭소를 터뜨리는 바람에 탈바가지들이 붉은 사금파리처럼 부서져 흩어지며 불길로 치솟아올라가 버렸습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부서진 탈들을 날려버리고 사람들은 초상마당의 본얼굴을 찾느라부산해졌습니다.
다시 마당가의 사람들은 여기저기 제자리로 흩어져, 노름꾼들은, "패 돌려 패, 누구 잡을 차례지" 하며 자리를 잡고, 윷이야! 모야! 윷판이 벌어지고 부엌은 부산해지며 상주들과 사람들은 열을 올리며 끊어진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이어갔습니다. " 참 내, 난 통안이떡이 참말로 우는 줄 알았당게. 자, 한잔씩 들어, 서울 산다는 것이 꼭 도깨비 바닥이여" 어쩌고저쩌고 술잔들을 돌렸습니다.
팥죽이 끓여져 여기저기 서고 앉아 후루룩후루룩 팥죽들을 마신 후 여기저기 쓰러지고 더러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초상마당은 한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헛간과 골방 노름꾼들이 이마를 맞대고 앉아 정신없이 패들을 돌려 조이고 오랜만에 뜨겁게 불들이 피워진 이 방 저 방 방마다 오랜만에 함께 모인 사촌들은 " 죽어도 고다 고"를 찾고 방마다 온갖 친척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상복을 입은 채, 건을 쓴 채 쓰러져 잠들어갔습니다. 작은 상주인 아랫집
큰아버지는 술이 취해 할머님 영호 앞에 잠이 들고 늙으신 큰아버지 홀로 멍석 위에 앉아 할머님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이따끔 노름패들의 술과 국을 떠다 주느라고 어머님의 잠먹은 소리가 조용조용 들리고 모닥불은 나무가 거의 다 타 잉그락만 남아 이글거렸습니다. 이따끔씩 노름꾼들이 내게로 와서 돈을 빌어 갔습니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패들 밖에 아무렇게 쓰러져 잠들고 꾼들은 패를 조용조용 거두고 조용조용 깔아 조였습니다. 패를 깔고 조이는 노름꾼들 밖에서 밤은 깊어지고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둠의 끝에서 날이 새기 시작하자 이 방 저 방에서 두세두세 뿌시뿌시한 얼굴로 잠을 쫓아내며 사람들이 일어나고 아침밥들을 서둘러 먹고 상여가 꾸며지기 시작했습니다.
상여는 회간을 나가 정자나무 밑에서 거리제를 끝내고 강길을 따라 어노어노 핑경소리를 울리며 갔습니다. 산천은 푸르러지고, 어머님은 이틀이나 울어서 쉰 목소리로 상여채를 붙잡고
어매는 좋겠네
어매는 좋겠네
다 살고 죽었응게
어매는 좋겄네
어매 자식 만나로 강게
어매 남편 만나로 강게로
어매는 좋겄네
구슬프게 강물을 출렁이게 하고, 머리가 허연 큰고모는 어매어매 하며 눈물 없는 메마른 울음을 울며 새끼줄에 노잣돈을 걸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오게오게 모여 서서 눈물들을 흘렸습니다.
살아생전 고인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후회에 울고 잘했으면 정으로 더 서러운 것이 죽음이어서 맑은 햇살 속 사람들의 눈물은 이 산천의 눈물처럼 초라하고 강물처럼 가난했습니다.
상여는 강길을 벗어나 논두렁 밭두렁을 넘고 넘어 산으로 산으로 험헌 산으로 올라챘습니다. 논밭두렁을 넘고 가시덤불을 헤쳐 넘을 때마다 상여꾼들이 떼를 쓰면 상주들은 새끼줄에 돈을 걸었습니다.
올라가세 올라가세
태산준령을 올라가세
북망산천을 올라가세
오늘 해는 여기서 놀고
내일 날은 어딜 가나
어노 어노 어어노오
인저 가면 언제 오나
명년 삼월 돌아오지
올라가세 올라를 가세
어노 어노 어어노오
북망산이 머다더니
건넛산이 북망일세
어어노 어어노 어어노오
저승길이 먼 줄 알았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
상여는 봄볕 따사로운 산으로 길을 내며 올라갔습니다. 상여가 지나간 자리마다 어린 보리들이 새파랗게 쓰러지고 묵정밭을 지나 가시덤불 밭두렁을 넘을 때마다 상여소리는 더 구슬퍼지며 종이꽃이 찢어져 산딸기꽃 맺힌 가시마다, 찔레순 돋은 찔레 가시마다 걸렸습니다. 햇빛 좋은 산허리를 지나는 상여소리가 동네와 아주 멀어지고 아득해지자 동구 밖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한꺼번에 흩어졌습니다.
상여 뒤에 처져 누이들은 쭈그려 앉아 돋아나는 쑥이나 나물들을 뜯기도 하고 하얀 싸리꽃을 꺾어 들기도 하며 서울에서 온 손녀딸들은 돈 주고야 사 먹는 나물을 뜯어 "천원어치는 되겄다야" 하며 천 원어치의 나물과 맑고 깨끗한 햇볕이랑 하얀 상복 치마에 싸 담았습니다.
땅이 파 헤쳐져 붉고
사람들은 쓰러지며
다사로운 봄볕에 취했습니다.
관 위에 흙을 던질 때마다
무덤 속을 따라 들어갔던
햇살들이 쫓겨났습니다.
할머님은,
그 좋은 햇살 한줌 쥐지 못한 채 묻히고
큰아버님은 관을 다 덮고
따독따독 흙을 밟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 절대 못 판다는, 이제는 묵어 쑥대만 우북한 선산 삼밭머리 생땅을 붉게 파 산을 눈 띄워 할머님의 눈에 흙을 넣고 할머님 눈과 산의 눈을 고스란히 감겨가며 뗏장을 둥그렇게 얹었습니다. 여기저기 무덤들 속에 할머님의 무덤은 새로 둥그렇고 평화스럽게 드러나고 상주들은 상여가 왔던 길을 되짚어 발자욱을 찾아 디디며 뒤돌아보지 않고 내려갔습니다. 가시덤불 묵정밭들의 길과 논밭두렁을 걸으시는 일흔이 넘으신 큰아버지의 샛노란 삼베 상복은 푸른 보리밭들속에 유난히 호젓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어
산으로 가고
마을은 텅텅
비어가고.
큰누이와 작은누이와 뒤떨어져서 나는 돌아왔습니다. 할머님이 강 굽이굽이 논밭 구석구석 숨을 거두어 모아 풀어버린 숨결 같은 진달래가, 핏빛 진달래가 숨결이 돌아오듯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진달래꽃 피는 산길로
사람들이 흙을 털고
길게길게 취해 하산하고
할머니 굽은 등 같은 산굽이를 돌며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장지로부터 마지막 사람이 떠나자
산이 우뚝우뚝 솟고
우두둑우두둑
산의 뼈마디 소리가 들리며
잠깐 사이 부산해지는 소리를
나는 들었습니다.
할머님의 손과 발, 온몸이
다 닿은 이 산천에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할머님의 주검마저 없는 집엔 하나씩 하나씩 사람들이 객지로 뿔뿔이 흩어져 나가고 동네는 며칠 전으로 한산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늙은 어른들 두엇이 영호를 새로 짓고 서럽도록 맑고 가난한 햇빛 좋은 황토흙 마당에 흩어진 물건들을 제자리로 치웠습니다. 시꺼멓게 그을린 집과 금간 흙벽 여기저기 헛간 구석마다 나딩구는 녹슨 연장들과 등태 없는 지게들, 밑동 썩은 절구통과 비 맞아 삭은 덕석과 맷방석들, 녹슬고 부서진 경운기 부속
들, 무엇보다도 우리 어렸을 적 할머니와 화로 곁에 모여 앉아 놀았던 벽 무너진 쇠죽방을 쳐다보며 나는 쓸쓸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손주 하나가 소줏병에 덜 핀 진달래 몇 송이를 꽂아 할머님 사진 앞에 놓고 있었습니다.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과 움푹 패인 볼에 진달래빛이 물들었다가 사라졌습니다. 뒷산 귀목나무 까치들이 울며 푸드득 날아가며 까치 그림자가 마당을 훨훨 지나갔습니다.
마을은,
봄날의 부산했던
강변 작은 마을은
조용하고 맑기만 했습니다.
꽃밭등의 저녁 햇살이
눈부시게 사라지고
비질해 논
비질 자국마다
산그늘이 내리며
서럽게 해가 뚝 떨어졌습니다.
나는 할머님의 헌 옷이며, 베로 기워 다시 회푸대로 더덕더덕 바른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모집짝이며 바느질 그릇, 헌 신이며 때 지난 옷가지며, 헌 담뱃대를 뒤적뒤적 뒤적거려 태우며 태울 것밖에 없는 할머님의 일생을 더듬어 다시 뒤적거리며 이 작은 산천을 둘러보았습니다.
해 저문
뒷산이 내 등을
내려다보고
나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흘러가는 강물에
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머리가 허연 고모님이 징검다리를 건너 희끗희끗 어둑어둑 풀 우북한 산 아래 강길을 따라 가고 있었습니다.
봄빛이 앞산을 비추며
강 깊이 가만가만 환하게
타고 있었습니다.
"얘야, 내가 죽으면
내 간을 꺼내 보거라
내 간이 있는가 녹아부렀는가."
(『맑은 날』. 창작과비평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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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에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 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는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려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치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
자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 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그 여자네 집』.창작과비평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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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1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이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물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걸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섬진강』. 창작과비평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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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15
―겨울, 사랑의 편지
김용택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일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 풀들의
몸 다 뉘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섬진강』. 창작과비평사. 1985)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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