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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 신경림/이진명//이정록/박기동/박영근/전향/도종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7. 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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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신경림

 


젖은 나뭇잎이 날아와 유리창에 달라붙는
간이역에는 찻시간이 돼도 손님이 없다
플라타너스로 가려진 낡은 목조 찻집
차 나르는 소녀의 머리칼에서는 풀냄새가 나겠지
오늘 집에 가면 헌 난로에 불을 당겨
먼저 따끈한 차 한잔을 마셔야지
빗물에 젖은 유행가 가락을 떠밀며
화물차 언덕을 돌아 뒤뚱거리며 들어설 제
붉고 푸른 깃발을 흔드는
늙은 역무원 굽은 등에 흩뿌리는 가을비

 

 


-시집『신경림 시전집 2』(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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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이진명

 


나무가 마르고 잎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

 

네가 가고 내가 가나

 

냉골 범골 칼바위 삼성암 빨랫골

 

유석조병옥묘소 공초오상순묘소 이름 없는 처녀묘

 

영락기도원 까르멜여자봉쇄수도원 화계사국제선원

 

마른 나무 비에 젖고 떨어진 잎 비에 젖으면

 

너도 가고 나도 가나

 

 


-계간『문학나무』(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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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이정록

 


단 한 번의

빗나감도 없이

오직 정타뿐이어서


벌레 한 마리

다치지 않는

저 참깨 터는 소리


불길 헤집던 부지깽이가

나이테도 없는 빈 허공을

어루는 소리


골다공증의 뼈마디와

곳간 열어젖힌 꼬투리가

긴 숨 내쉬는 소리


비운 것들의

복주머니 속으로만

저 초가을 빗소리

 

 


-시집『의자』(문학과지성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