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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 와온臥溫 가는 길 / 와온바다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7. 1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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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온臥溫 가는 길
 

  곽재구

 


  보라색의 눈물을 뒤집어쓴 한 그루 꽃나무가 햇살에 드러난 투명한 몸을 숨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궁항이라는 이름을 지닌 바닷가 마을의 언덕에는 한 뙈기의 홍화꽃밭이 있다


  눈먼 늙은 쪽물쟁이가 우두커니 서 있던 갯벌을 따라 걸어가면 비단으로 가리워진 호수가 나온다

 
 

 

 

와온바다

 

곽재구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최초의 휴식이다

 
당신의 슬픈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다

구부정한 허리의 인간이 개펄 위를 기어와 낡고 해진 해의 발바닥을 주무른다

 
달은 이곳에 와

첫 치마폭을 푼다

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

 

등이 하얀 거북 두 마리가 불빛과 불빛 사이로 난 길을

리어카를 밀며 느릿느릿 올라간다

 
인간은

해와 달이 빚은 알이다

 
알은 알을 사랑하고

꽃과 바람과 별을 사랑하고

 

삼백예순날

개펄 위에 펼쳐진 그리운 노동과 음악

 
새벽이면

아홉 마리의 순금빛 용이

인간의 마을과 바다를 껴안고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시집 『와온바다』(창비,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