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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신경림
젖은 나뭇잎이 날아와 유리창에 달라붙는
간이역에는 찻시간이 돼도 손님이 없다
플라타너스로 가려진 낡은 목조 찻집
차 나르는 소녀의 머리칼에서는 풀냄새가 나겠지
오늘 집에 가면 헌 난로에 불을 당겨
먼저 따끈한 차 한잔을 마셔야지
빗물에 젖은 유행가 가락을 떠밀며
화물차 언덕을 돌아 뒤뚱거리며 들어설 제
붉고 푸른 깃발을 흔드는
늙은 역무원 굽은 등에 흩뿌리는 가을비
-시집『신경림 시전집 2』(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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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이진명
나무가 마르고 잎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
네가 가고 내가 가나
냉골 범골 칼바위 삼성암 빨랫골
유석조병옥묘소 공초오상순묘소 이름 없는 처녀묘
영락기도원 까르멜여자봉쇄수도원 화계사국제선원
마른 나무 비에 젖고 떨어진 잎 비에 젖으면
너도 가고 나도 가나
-계간『문학나무』(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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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이정록
단 한 번의
빗나감도 없이
오직 정타뿐이어서
벌레 한 마리
다치지 않는
저 참깨 터는 소리
불길 헤집던 부지깽이가
나이테도 없는 빈 허공을
어루는 소리
골다공증의 뼈마디와
곳간 열어젖힌 꼬투리가
긴 숨 내쉬는 소리
비운 것들의
복주머니 속으로만
저 초가을 빗소리
-시집『의자』(문학과지성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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