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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 이하석 - 매미 / 고영민 - 매미 / 윤제림 - 매미 / 복효근 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7. 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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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이하석

 

 

매미가 운다
중앙공원 인근 우체통에 옆
밤의 나무 그늘 우표처럼 붙어서


이 밤중에 자지 않고 웬 울음?
불빛 밝아 낮인 줄 아나?
그 보다 더 그리우니까?


그러니까 그리우니까?
아직도 서로 완전히 오지 않아서
불빛 아래 차오르는 그늘의 수위를 재며
우리는 가로수 그늘 아래 마주 서 있고


매미는 새벽까지도 울음 그치지 않네
이산가족들 만나 껴안고 우는 사진 구겨진
신문 덮고 집 없는 이는 저 구석에서 자는데


오직 울음으로 만나질 제짝 그려
지하에서 한사코 지상에 올라온 것들
제 모든 걸 울어 밝혀 잠 못 드는

 

 


―시집『것들』(문학과지성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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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고영민

 

 

울음을 뚝, 멈추는 것
 

울음 속에 울음을 섞는 것
 

울음 속에 몰래 제 울음을 섞다가
 

들키는 것
 

다시 목청껏 우는 것

 

 
 

―시집『공손한 손』(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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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윤제림

 


내가 죽었다는데, 매미가 제일 오래 울었다


귀신도 못되고, 그냥 허깨비로
구름장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니
매미만 쉬지 않고 울었다


대체 누굴까,
내가 죽었다는데 매미 홀로 울었다,
저도 따라 죽는다고 울었다

 

 

―계간『시와미학』(2011, 가을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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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복효근

 

 

울음 수직으로 가파르다

수컷이라고 한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울음뿐이었을 때

그것도 한 재산이겠다

 

뱃속이 투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적빈으로

늘 난간에 매달려

기도 외엔 속수무책인 삶을

그대에게 갈 수 있는 길이

울음밖에 없었다면 믿겠나

 

7년 땅속 벌레의 전생을 견디어

단 한 번 사랑을 죽음으로 치러야 하는

저 혼인비행이

처절해서 황홀하다

 

울고 갔다는 것이 유일한 진실이기라도 하다면

그 슬픈 유전자를

다시 땅속 깊이 묻어야 하리

그 끝 또한 수직이어서 깨끗하다

 

 


―시집『따뜻한 외면』(실천문학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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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속으로 매미 한 마리가


문태준

 


검푸른 감나무 속으로 매미 한 마리가 들어섰다

감나무를 바싹 껴안아 매미 한 마리가 운다

울음소리가 괄괄하다

아침나절부터 저녁까지 매미가 나무에게 울다 간다

우리의 마음 어디에서 울음이 시작되는지 알 수 없듯

매미가 나무의 어느 슬픔에 내려앉아 우는지 우리는알 수 없다

나무도 기대어 울고 싶었을 것이다

나무는 이렇게 한번 크게 울고 또 한 해 입을 다물고 산다

 

 


―시집『가자미』(문학과시성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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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들


이면우

 


사람들이 울지 않으니까
분하고 억울해도 문 닫고 에어컨 켜놓고 TV 보며
울어도 소리없이 우니까


요렇게 우는 거라고
목숨이 울 때는 한데 모여
숨 끊어질락 말락 질펀히 울어젖히는 거라고


옛날옛적 초상집 마당처럼 가로등 환한 벚나무에 매달려
여름치 일력 한꺼번에 찌익, 찍, 찢어내는 매미들 울었다
낮 밤 새벽 가리잖고 틈만 나면

 

 


―시집『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창작과비평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