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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 이문재/김충규/김혜영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7. 17.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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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시집『이 시를 가슴에 품는다』(2006, 랜덤하우스중앙)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41』(조선일보 연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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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김충규

 

 

어제까지만 해도 이승의 공기를 나눠 마셨던 사람이

지상에서 사라졌다는 부음을 들을 때,

내 심장엔 얇은 막 하나가 생겼다

죽음 따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하여…

 

쭈글쭈글한 참새 한 마리가 화단

나무 아래에서 떨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나보다 늦게 이승에 와서 나보다 일찍 가게 될 참새를 위하여

노래를 지어낼 재주가 나엔겐 없다

잠시 서글퍼하지도 말고

 

죽은 사람의 소식을 듣고부터 내 머릿속은 온통 白夜,

백야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새들은 허둥거리지 않고 죽을 사람은 죽고

사라지는 것은 사라졌다

노트에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하였고

누구의 노래도 듣지 않았으며

아껴 흥얼거렸던 詩도 끊곤 했던

한때도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심장에 막 하나가 생길 뿐

이제는 입가에 경련이 생기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오라 죽음아, 잘근잘근 껍길째 씹어주마, 호기를 부릴 정도라고나 할까

 

이렇게 말했을 때, 누구는

늙고 있음을 자각하는.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충고했으나

그때 내 대답은

당신 먼저 죽으면 근사한 詩碑를 세워 드리죠!

혹은

내 먼저 죽으면 내 뼛가루 뿌린 산으로 찾아와 노래나 한 곡 불러주시죠!

라는 농담을 대신할 정도

 

그런데 아직도 가끔

죽은 자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하여 영안실을 찾을 때

내 머릿속이 백야가 돼 버리는 현상,

입가에 경련이 일어나고 하면 지그시 깨물어 버티는

심장에서 타닥타닥 튀는 불꽃을 한 잔의 소주로 진화하는

 

어제는 우리끼리 巨木이라 부르는 분의 영안실에 다녀와서

노트에 '농담'이란 글자만 계속 써댔다

정말 농담이라면…

그분의 죽음이 한 순간에 웃고 넘길 농담이라면…

 

백야가 펼쳐진 내 머릿속 광활한 숲에서

여우 떼가 출몰해 울부짖었다 물론

여우 떼는 내가 무수히 써댄 '농담'의 육체였다

 

내 심장에 생긴 막

나의 우울한 농담에 불과했나?
 

 


―반년간『시산맥』(2009년 창간(상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