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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이은림
생일 축하해요,
오래전의 그가 말했다
아무 날도 아닐 뻔한 어느 아침
고마워, 라는 말은 그냥
뜻 없는 인사 같은 것
겨우 핀 봄꽃들 위로
사흘째 잠깐씩 눈발이 날린다
분명, 이상한 풍경인데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
다 그런 거지 뭐,
한마디만 던졌을 뿐인데도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생일 축하해요,
그의 말 한마디에
지리멸렬한 시간들이 산뜻해졌다
아무렴 어때, 생일이 뭐 별거야
케이크 값이 아깝지 않기도 처음
구름의 군무는 지겹고 지루했다
언제까지 저 눈발을 보며
안부전화를 드려야 하는 걸까
이 계절에 잘못 내린 눈처럼
끝없이 의심받는 달력처럼
어딘지 불안한 뉴스처럼
또다시 암환자가 되어버린 아빠
아빠, 저는 오늘도 안녕해요
언제든 생일일 수 있고
케이크는 어디서든 살 수 있거든요
아빠, 거기선 벚꽃잎이 눈처럼 날리나요
여기는 진짜 눈이 와요
그래도 봄은, 봄이에요
아마 그럴 거예요
―계간『시인동네』(201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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