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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잊어 / 김소월 - 님의 침묵 / 한용운 - 앞날 / 이성복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9. 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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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잊어

 
김소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나지요?"

 

 

 

―시집『못잊어』(동문선,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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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님의 향기로운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는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거와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 회동서관. 192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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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날

 
  이성복

 

 

  당신이 내 곁에 계시면 나는 늘 불안합니다 나로 인해 당신 앞날이 어두워지는 까닭입니다 내 곁에서 당신이 멀어져 가면 나의 앞날은 어두워집니다 나는 당신을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떠나갈까 안절부절입니다 한껏 내가 힘들어하면 당신은 또 이렇게 말하지요 “당신은 팔도 다리도 없으니 내가 당신을 붙잡지요” 나는 당신이 떠나야 할 줄 알면서도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시집『그 여름의 끝』(문학과지성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