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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이성복-푸른 거처/이재무-장석남/돌의 새-남해금산 -그대에게 가는 길 12/임영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1. 2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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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남해 금산』. 문학과지성사. 198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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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거처

 

이재무

 


나무 속으로 내 사랑 들어갔네


나무 속으로 들어간 내 사랑


잎으로 돋고 꽃으로 피어나


사계를 살았네


나무 속에는 푸른 방이 있고


나무 속에는 푸른 나무가 있고


나무 속에는 푸른 창이 있다네


어느 날은 환하게 웃고


어느 날은 명주 올보다 더


가늘게 귓속 골목을 파고드는 노래


저 나무속 내 미래의 거처엔


오래전 내 곁을 떠나간


사랑이 살고 있다네

 

 

 

―시집『경쾌한 유랑』(문학과지성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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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새


장석남

 


노란 꽃 피어
산수유나무가 새가 되어 날아갔다
산수유나무 새가 되어 날아가도
남은 산수유나무만으로도 충분히
산수유나무


너는 가고
가고 나는 이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너를
달리 무엇이라고 부르나


길 모퉁이에 박힌 돌에 앉아서
돌에 감도는
이 냉기마저도 어떻게 나누어 가져볼 궁리를 하는 것도
새롭게 새롭게 돋은 어떤 새살肉)인 모양인데


이 돌멩이 속에 목이 너처럼이나 긴
새가 한 마리 날아간다
날아가긴 해도 그 자리에서만 날아가고 있다

 

 

 

-시집『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작과비평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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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금산

―그대에게 가는 길 12


임영조

 

 

길의 끝 남해금산에 오른다
나사못 같은 숲길을 가쁘게 돌아
정상까지 오르면 땀에 전 시간이
몸에 척척 감기고 해는 벌써 반나절
봉수대에 올라 그만 오던 길을 놓는다
그대는 물론 나도 깜박 잊는다
저 멀리 내색 감춘 난바다가
억겁의 파도소리 거칠게 말아
아제아제 바라아제 추켜올린 산
온 산이 햇볕 받아 섬섬하고 푸르다
혼자 높고 별나서 심심했던지
볕 바른 이마 위에 보리암을 앉히고
앞바다엔 크고 작은 섬을 뿌렸다
그중 제일 쓸쓸해 뵈는 섬 하나
내게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다 못해
내가 먼저 달려가 섬이 되어 떠돈다
비로소 세상과 멀어졌다는 안도감
이젠 보리암이 어디냐고 묻지 않는다
잠시 오던 길을 지우고 무위에 드니
그대에게 가는 길도 묻지 않는다
아득한 북녘 향해 안녕! 안녕!
마음속 봉화 들고 내려오는데
내 머리 위를 맴도는 까마귀 일가
검은 상장처럼 무겁게 난다, 혹여
오래 전에 오염된 고향을 버리고 뜬
그 일가가 아니냐고 넌짓 묻는다
까흑! 까흑! 까흐흑
갑자기 남해대교가 크게 출렁인다.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2 (제5시집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천년의 시작,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