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춤판
정선희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떠난 아버지 어둠이 되어 찾아왔어 베어낸 감나무 위에 앉은 아버지 뚬벙 속을 더듬거리다가 지푸라기 같은 어머니 불러내고 있어 이 주일을 굶은 귓속에만 들리는 목소리로 불러내고 있어 아스라이 지워지는 목소리로 불러내고 있어 저러다 영감 따라 가고 말지 동네 사람들이 굿을 하기로 했어 아버지 49재 지낸 절에서 굿판을 벌였어
작은 옹달샘을 감춘 들판이
어머니를 꽂아놓고 때리기 시작했네
물에 씻은 싸리빗자루로 때리기 시작했네
깻단을 후려치듯 몸에 붙은 아버지 털어내기 시작했네
한사코 달라붙는 아버지 패대기치기 시작했네
혼자 가기 싫은 아버지 울면서 목어를 흔드네
갈 길 먼 아버지 탑돌이하며 중얼거리네
울지 마시게
울지 마시게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은 어머니
두들겨 맞고서야 우네
맞은 자리 아파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울다가 울음보 터진 어머니
악악거리며 우네
한바탕 잘 울고 난 어머니
거짓말처럼 환해진 얼굴
더 이상 슬픔은 앉을 데가 없어
몸에서 떨어져 나온 부우연 것들이
머뭇거리며 떠나가던 날들이 있었네
─문학무크『시에티카』(2013. 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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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암 4기 아버지
정선희
아버지 오래 전에 불사른
성경책을 펼치네
살 수만 있다면 하나님과도
화해하겠다는 아버지
성경책을 펼치네
20년 전에 불사른 성경책이
혀를 날름거리네
무슨 말인가 하려고 달려드네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아버지
손으로 말을 하네
눈으로 말을 하네
주여! 저의 죄를 용서해주소서
어머니를 예수쟁이라 욕하고
일요일마다 두들겨 팬 아버지
성경책을 찢고
성경책을 불사른 아버지
마지막 3개월만 믿으면
모든 죄가 청산이 될까
뻔뻔스러운 아버지
염치도 모르는 아버지
막판 뒤집기로 천국행을 꼭 타겠다고
앞사람을 밀치고 줄을 서는데,
하나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월간『우리詩』(201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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