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게
김제현
안다
안다
다리가 저리도록 기다리게 한 일
지쳐 쓰러진 네게 쓴 알약만 먹인 일 다 안다
오로지 곧은 뼈 하나로
견디어 왔음을
미안하다, 어두운 빗길에 한 짐 산을 지우고
쑥국새 울음까지 지운 일 미안하다
사랑에 빠져 사상에 빠져
무릎을 꿇게 한 일 미안하다
힘들어하는 네 모습 더는 볼 수가 없구나
너는 본시 자유의 몸이었나니 어디로든 가거라
가다가 더 갈 데가 없거든 하늘로 가거라
ㅡ시조집『백제의 돌』(열린시학,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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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적위반
조재형
검진센타를 내원한 날
혈류를 파손하는 주범이 적발되었다
추락한 시력을 들여다본 젊은 의사가
평생 볼모로 나포된 거라며 휘슬을 분다
백년도 미치지 못할 주행거리
천년을 운행할 듯 적재함을 채웠다
하중을 견디지 못한 혈당 수치가 널뛰기 한다
경고등을 무시하고 방임하는 사이
온몸에 잠입한 것인가
정직한 몸이 미리 전파했을 빨간불
통장 액면에 흐려진 시야가
체적량을 초과하였던 것
채혈을 시도하는데 통로가 막혀 있다
유유자적이 진입로를 찾지 못한 것
마음을 비우라는 처방이다
전신에 만차된 허식과 휴경지를 뒤덮은 위선의 잡초
마음과 결탁한 저 무거운 화물들
하차시키기 쉽지 않은 일인데
발부한 진단서는 백기처럼 펄럭이고
―『아라문학』 (2013. 가을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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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맙다
신지혜
자기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해본 적 있으신지요
애썼다 고맙다 말해본 적 있을신지요
자신을 격려하고 등 토닥여본 적 있으신지요
자신에게 두 무릎 꿇고 자신에게 절해본 적 있으신지요
누가 뭐래도 자기 자신만큼 가까운 베스트 프렌트는 없지요
병실에 누운 사람들이 가장 먼저 후회하는 것,
자신을 사랑할 걸 그랬다고
자신을 공경할 걸 그랬다고
자신에게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 걸 그랬다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말 걸 그랬다고
나만큼 나를 아는 사람 또 지상에 보셨나요
우주를 연 것도 아니며, 우주를 닫는 것도 나인데요
내 육신에게 늘 고맙다는 칭찬 한 마디 해준 적 없어,
내 심장아, 위장아, 간아, 허파야, 신장아,
비장아, 대장아, 소장아, 두 팔다리야,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아, 애썼다고
나는 난생 처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눈뜬 이래 한시도 쉬지 않고 나를 보존하고
무상보시 하는 내 안 고귀한 생명들에게,
속만 털어놓습니다
수천 겁 나 이끌고 여기 와 내려주었으니,
애쓴 나의 뿌리야 고맙다
내가 나를 으스러지게 힘껏 껴안았습니다.
-격월간『유심』(20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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