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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명을
모윤숙
임이 부르시면 달려가지요.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임이 오라시면 가지요.
임이 살라시면 사오리다.
먹을 것 메말라 창고가 비었어도
빚더미로 옘집 채찍 맞으면서도
임이 살라시면 나는 살아요.
죽음으로 갚을 길이 있다면 죽지요.
빈손으로 임의 앞을 지나다니요.
내 임의 원이라면 이 생명을 아끼오리.
이 심장의 온 피를 다 빼어 바치리다.
무엔들 사양하리, 무엔들 안 바치리.
창백한 수족에 힘 나실 일이라면
파리한 임의 손을 버리고 가다니요.
힘 잃은 그 무릎을 버리고 가다니요.
―시집《빛나는 지역》(1993. 10) 수록.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동그라미
손미
당신 앞에서는
저 동그라미입니다
밑도 끝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무엇 하나 가진 것 없어
잴 수도 없는
텅 빈 동그라미 바로 접니다
그래도 당신께서 불러 주신다면
눈물 자국 얼른 지우고 달려가
예 그대여 저는 항상
동그라미입니다
―『덩달아 수줍다』(서설시동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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