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소 - 신달자/김기택/오세영/김왕노/박남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6. 25. 09:27
728x90


신달자

 

 

사나운 소 한마리 몰고
여기까지 왔다
소몰이 끈이 너덜너덜 닳았다
미쳐 날뛰는 더러운 성질
골짝마다 난장쳤다
손목 휘어지도록 잡아끌고 왔다
뿔이 허공을 치받을 때마다
몸 성한 곳 없다
마음의 뿌리가 잘린 채 다 드러났다
징그럽게 뒤틀리고 꼬였다
생을 패대기쳤다
세월이 소의 귀싸대기를 한 사흘 때려 부렸나
늙은 악마 뿔 삭아내리고
쭈그러진 살 늘어뜨린 채 주저앉았다 넝마 같다
핏발 가신 눈 꿈벅이며 이제사 졸리는가
쉿!
잠들라 운명

 

 


―계간『문학들』(2006. 가을)

 

------------------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시집『소』(문학과지성사, 2005)
―시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10』(국립공원, 2007)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2』(조선일보 연재, 2008)

 

-----------------------


오세영

 

 

이 세상의

생을 영위하는 것들 가운데서

황소만큼 든든히 대지에

발을 딛고 우뚝 선 자는 없다.

든든하다는 것은 곧

믿음직스럽다는 것.

모든 믿음직한 존재는 말보다

실천을 앞세운다.

등에 햇빛을 지고

온몸으로 대지를 갈아엎어

싱그럽게 생명을 키우는

짐승,

그의 노역은 정녕

운명을 사랑하는 행위일지니

네 처연한 눈동자에 스치는 흰 구름이

문득

하늘의 무게를 말해준다.

 

 

 

―시집『바람의 아들들 ―동물시 초抄』(현대시학사, 2014)

 

--------------------------

 

김왕노

 

 

우황 든 소는 캄캄한 밤

하얗게 지새며 우엉우엉 운다.

이 세상을 아픈 생으로 살아

어둠조차 가눌 힘이 없는 밤

그 울음소리의 소 곁으로 다가가

우황주머니처럼 매달리어 있는 아버지

죽음에게 들킬 것 훤히 알고도

골수까지 사무친 막 부림 당한 삶

되새김질하며 우엉우엉 우는 소

저처럼 절벽울음 우는 사람 있다

우황 들게 가슴 치는 사람 있다

코뚜레 꿰고 멍에 씌워 채찍 들고서

막무가내 뜻을 이루려는 자가 많을수록

우황덩어리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 많다

우황주머니 가슴에 없는 사람

우엉우엉 우는 소리 귀담지 못한다.

이 세상 소리 내어 우엉우엉 울지 못한다.

 

 

 

―시인축구단 글발 엔솔로지『토요일이면 지구를 걷어차고 싶다』(북인, 2012)

 


----------------------

―유용주에게

 
박남준

 

 

쓰러진 산을 넘고 폐수의 강을 건넜으리

검은 아스팔트들은 비바람을 부르고

따뜻했던 한 그릇 옛날의 고봉밥은 눈보라에 젖었으리

악물고 견뎌온 목울음이 으르릉 들려온다

 

길에 내몰리며 떠돌고 갈 곳 없던 자만이

도저한 그 길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리

다시금 모진 것들을 따뜻하게 껴안을 수 있으리

뒤틀리고 굽이치는 상처의 옹이 하나 없는 나무가

어찌 청산을 지킬 수 있으랴

 

꿈틀거려라

그래 악을 쓰마 인정하마 나도 잘못 살아왔다

온몸이 우레의 공명이 되어 달려가는 노래가

귓가에 쟁쟁하다

 

 

 

―시집『적막』 (창작과비평사, 2005)

 

-------------------------------
소 1

 

박숙이

 

 

노인의 몇 배되는 덩치 큰 황소를

시장한 저녁이 몰고 간다.

 

황혼이 황혼을 최선을 다해 비출 때

워낭소리가 점점 깊어진다.

 

소는 왠지 자꾸

뒷걸음쳐 딴청을 피우고

 

그럴수록 노인의 부리는 목소리가

소를 우렁차게 내리친다

 

노인을 일바시는 소의 시근이 참, 백 근도 더 넘겠다.

 

 

 

―『대구문학』(2010. 5∼6)

 

---------------------
서울에 사는 소


김륭

 


1


소(牛)를 키운다. 아파트 거실에서

밤마다 정육점 갈고리에 매달리는 꿈이라도 꾸는 건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몸서리치는

소.

 

애완 동물을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딸아이가

소를 등지고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다.

우우 눈(目)으로 우는

소.

 

운동장만한 아파트가 고향집 외양간보다 불편한지

워워, 틈만 나면 슬그머니 집을 나가는 소.

지하 주차장이나 놀이터를 갈아엎어 아내 얼굴에 똥칠을 하는

우리 집 소는 뿔이 없다.

서울로 끌려오면서 팔아치운 논밭뙈기 그리운 날이면

사거리 맥도널드 체인점 앞에 모락모락 소똥 퍼질러 놓는다.

그때마다 난리가 난다.

어이구, 못살아 내가 못살아! 제발 집안에 편히 계세요

아내에게 사랑받는 우리집 소는 음매음매

자주 아프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등골 빠질 만큼 실컷 부려먹은 소, 당장 도살장으로 모셔야하지만

아내는 애완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2


아버지 참 눈치도 없다.

애완 동물을 사랑하는 아내가 헬스클럽에서 돌아왔는지 모르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거실 소파에 소똥 퍼질러 놓고 있다.

 

 


(2005년 제 1회 월하지역문학상 수상작)

 

----------------------
   이 소 받아라
   ―박수근


   김용택

 

 


   내 등짝에서는 늘 지린내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업은 누이를 내리면 등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지요

   누이를 업고

   쭈그려 앉아 공기놀이나 땅따먹기를 하면

   누이는 맨발로 땅을 차며

   껑충거렸지요 일어나보면 땅에는 누이의 발가락 열개 자국이 또렷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나는 누이 발바닥에 묻은 흙을 두 손으로 털어주고 찬 두 발을 꼭 쥐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동이 가득 남실거리는 물동이를 이고 서서 나를 불렀습니다

   용태가아, 애기 배 고프겄다

   용태가아, 밥 안 묵을래

   저 건너 강기슭에

   산그늘이 막 닿고 있었습니다

   강 건너 밭을 다 갈아엎은 아버지는 그때쯤

   쟁기 지고 큰 소를 앞세우고 강을 건너 돌아왔습니다

   이 소 받아라


   아버지는 땀에 젖은 소 고삐를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시집『나무』(창작과비평사, 2002)

 


-----------------------------
아버지의 소

 

이상윤

 

 

땡볕 속에서 쟁기를 끄는 소의 불알이

물풍선처럼 늘어져 있다

아버지는 쟁기질을 하면서도 마음이 아프신지

자꾸만 쟁기를 당겨 그 무게를 어깨로

떠받치곤 하셨다

금세 주저앉을 듯 흐느적거리면서도 아버지의

말씀 없이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는

감나무 잎이 새파란 밭둑에 앉아서 나는

소가 참 착하다고 생각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아버지는 동네

앞을 흐르는 거랑 물에 소를 세우고

먼저 소의 몸을 찬찬히 씻겨주신 뒤

당신의 몸도 씻으셨다

나는 내가 아버지가 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으나 파킨슨씨병으로

근육이란 근육이

다 자동차 타이어처럼 단단해져서 거동도

못하시는 아버지의 몸을 씻겨 드리면서야 겨우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힘들고 고단한 세월을 걸어오시는 동안

아버지의 소처럼 나의 소가 되신

아버지

아버지가 끄는 쟁기는 늘 무거웠지만

나는 한 번도 아버지를 위해서 백합처럼 흰

내 어깨를 내어 드린 적이 없다

입술까지 굳어버린 아버지가 겨우 눈시울을 열고

나를 바라보신다

별이 빛나는

그 사막의 밤처럼 깊고 아득한 길로

아직도 무죄한 소 한 마리 걸어가고 있다

 

 

 

―시집『하느님도 똑같다』(화암, 2012)

 

--------------------
묵화((墨畵)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십이음계』. 삼애사. 1969 :『김종삼 시전집』. 청하. 1988)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늙은 소


―정래교(1681∼1759)

 

 

힘 다해 산밭 갈고 난 뒤에
나무 그루터기에서 외로이 우네.
어떻게 해야 개갈(介葛)을 만나서
네 뱃속의 말을 할 수 있을거나.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178』(동아일보. 2013년 11월 06일)

 


老牛(노우) - 정래교(鄭來僑)

늙은 소

 

盡力山田後(진력산전후) : 힘 다해 산밭 갈고 난 뒤에

孤鳴野樹根(고명야수근) : 나무 그루터기에서 외로이 우네.

何由逢介葛(하유봉개갈) : 어떻게 해야 개갈을 만나서

道汝腹中言(도여복중언) : 네 뱃속의 말을 할 수 있을거나

 


조선시대 한평생 낮은 신분 탓으로,  소처럼 부림을 당하고 늙어서 그 멍에를 못 벗어나는 모순된 사회구조를 고발한 작품이라는 손종섭 선생의 해설,


================
늙은 소 한 마리가 들판 밭 두둑 가 나무 밑둥에 매어 있다. 하루 종일 가꿀진 산비알 험한 밭을 갈았다. 배는 고프고 힘은 빠져 서 있는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남은 것은 굶주림과 뼈만 남은 마른 몸, 그럴수록 더 고된 노동 뿐이다. 3구의 개갈(介葛)은 개갈로(介葛盧)의 줄임말이다. 춘추 시대 개국(介國)의 임금으로, 소의 언어를 능히 알아들었다는 사람이다. 내 말을 알아들을 개갈로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내 가슴 속에 묻어둔 하소연 서리서리 펼쳐내 들려주고 싶다. 결국은 이룬 것 없이 삶만 고달팠던 자신의 푸념을 소에 슬쩍 얹어본 것이다.


출처 : 정민교수의 한국한문학 홈페이지

 

---------------------
   ?꽃 먹는 소

 

   고진하

 

 

   인도의 소읍, 어느 성인의 탄신을 기리는 축제라던가?

   떠들썩 떠들썩한 축제 행렬 막 지나간 길, 꽃으로 가득한 트럭 위에서 사내들이 던진 꽃들 질펀하게 깔려 있네

 

   흠! 흠!

   붐비는 재스민 금잔화 향기 맡고 나타났을까, 난데없이 어슬렁거리며 등장한 흑소 몇 마리,

   더 넓을 순 없는 여물통, 뜨겁게 끓는 아스팔트에 깔린 꽃들을 우적우적 씹고 있네

 

   갈비뼈 아른아른 비쩍 마른 흑소들, 야윈 신들,

   꽃으로 주림을 채우고 있네 오, 공양(供養)? 맞네! 저 석조사원의 죽은 신들보다 죽은 성인들보다

 

   살아있는 신들을 먹여야 하리

 

   무엇보다 꽃으로 먹여야 하리

 
   꽃으로!

 

 

 

―시집『꽃 먹는 소』(문예중앙, 2013)

 

 

---------------------------
   북천
   ―소

 
   유홍준

 

 

   북천의 소는 도살된다 북천의 소는 네 토막으로 나뉘어진다 네 토막에서 다시 네 토막, 열 토막에서 다시 열 토막으로 나뉘어진다 북천의 소는 분리된다 북천 소의 발은 분리된다 북천 소의 등뼈는 분리된다 북천 소의 머리는 분리된다 북천 소는 북천 밖으로 분리된다 북천 소고기를 뒤집고, 북천 소뼈를 고아 마시고, 북천 소가죽을 신고 돌아다닌다 그대는 소의 혓바닥을 잘라 씹어 먹는다

 

 

 

―계간『미네르바』(2012년 봄호)

 


---------------------

-우황에 대하여


최창균

 

 

우황 든 소는 캄캄한 밤
하얗게 지새며 우엉우엉 운다
이 세상을 아픈 생으로 살아
어둠조차 가눌 힘이 없는 밤
그 울음소리의 소 곁으로 다가가
우황주머니처럼 매달리어 있는 아버지
죽음에게 들킬 것 훤히 알고도
골수까지 사무친 막부림 당한 삶
되새김질하며 우엉우엉 우는 소
저처럼 절벽울음 우는 사람 있다
우황 들게 가슴 치는 사람 있다
코뚜레 꿰고 멍에 씌워 채찍 들고서
막무가내 뜻을 이루려는 자가 많을수록
우황 덩어리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 많다
우황 주머니 가슴에 없는 사람
우엉우엉 우는 소리 귀담지 못한다
이 세상을 소리내어 우엉우엉 울지 못한다

 

 


―시집『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창비, 2004)

 

------------------
서울로 간다는 소


이광수

 


깎아 세운 듯한 삼방 고개로
누런 소들이 몰리어 오른다
구부러진 두 뿔을 들먹이고
가는 꼬리를 두르면서 간다.


음머 음머 하고 연해 고개를
뒤로 돌릴 때에 발을 헛짚어
무릎을 꿇었다가 무거운 몸을
한 걸음 올리곤 또 음 돌려 음머.


갈모 쓰고 채찍 든 소장사야
산길이 험하여 운다고 마라.
떼어 두고 온 젖먹이 송아지
눈에 아른거려 우는 줄 알라.


삼방 고개 넘어 세포 검불령
길은 끝없이 서울에 닿았네.
사람은 이 길로 다시 올망정
새끼 둔 고산 땅, 소는 못 오네.

안변 고산의 넓은 저 벌은
대대로 네 갈던 옛 터로구나.
멍에의 벗겨진 등의 쓰림은
지고 갈 마지막 값이로구나.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