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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영 - 분홍 그늘 / 나무 성자(聖者) / 뻐꾸기로 우는 봉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6. 1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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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그늘

 

유재영

 

 

소나기

 
지난 자리

 
여뀌꽃

 
분홍 그늘,

 
조붓한

 

봇도랑에

 
무슨 잔치 났나 보다

 
갈갈갈

 
새물내 맡고

 
모여드는

 
피라미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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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성자(聖者)

 
유재영

 

 

마을 앞 서로 굽고 동으로 뻗은 가지

 
굳은살에 검버섯도 드문드문 피는 육신

 
나이도 이쯤이 되면 넉넉한 그늘 한 채

 

 

부러진 가지 줍고 마른 잎 물어 오고

 
염주를 굴리듯이 가슴으로 품어 키운

 
내일은 수리 새끼들 분가하는 날이다

 

 

소쩍새 밤이 깊자 등이 휘는 북극성

 
하늘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는 사이

 
가지 끝 오목한 달이 꽃등처럼 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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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로 우는 봉분


유재영

 

 

해마다 모시면서 그 해 봄도 함께 묻어


해마다 이맘때면 뻐꾸기고 우는 봉분


옆 자리 우리 어머니 함께 듣고 계실까

 

저승도 보인다는 오동꽃 환한 날엔


눈에 익은 행서체로 나직히 휘어지는


그 말씀 무릎을 꿇고 잔처럼 받습니다

 

 


―시조집『느티나무 비명(碑銘)』(동학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