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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 바람의 유전자를 보았다 / 바람의 性別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8. 3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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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유전자를 보았다

 

  마경덕

  

 

  산 밑을 지나는데

  일제히 나무들이 날고 있었다. 새들에게 날개만 달아주던 나무들이 재재거리며 새떼처럼 울었다.

 

  누가 움켜쥐었다 놓쳤는지,

 

  이파리들 죄 구겨져 잠시 치솟더니 고꾸라졌다. 위험한 비행이었다. 먼발치에서 올려다본 산의 어깨가 수척했다. 바람이 쓸어내린 허공도 우묵했다. 마음을 버린 가을의 손바닥이 버석버석 마르고 있었다.

 

  데구루루 화장실 바닥을 구르는 두루마리, 둥글게 말려 벽에 걸렸던 숲의 기억이 쏟아졌다. 발목과 바꾼 날개를 달고 화장지는 멀리 달아난다. 나무는 뿌리를 버리는 순간, 어디든 갈 수 있다.

 

  대패와 톱으로 나무를 다듬던 아버지, 바람 부는 날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ㅡ계간『문예감성』(2011. 봄.여름)

ㅡ시집『글러브 중독자』(애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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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性別 

 

   마경덕

 

  

  썰물처럼 빠져나간 바람이 너울너울 밀고 간 모래물결, 맨발로 사막을 건너간 암컷의 흔적이다. 치맛자락 끌고 조신하게 걸어갔다. 수천 년 모래알을 세며 사막을 걸을 수 있는 자는 몸을 찢은 어미만이 가능한 일, 피 냄새를 기억하는 바람은 어디론가 흘러간 제 새끼를 보려고 족적足跡을 기록해 두었다.

 

  하지만, 기록이란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낙타의 행렬이 그녀의 발자국에 겹쳐지고 바람이 묻힌 자리에 또 바람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니,

 

  이곳에서 이별이란 그저 사소한 일. 평생을 떠돌다가 우연히 마주쳐도 늙어버린 어미를 기억할 바람은 없다. 새끼를 낳은 것들의 형벌은 떠난 자식을 끝까지 기억하는 것이다.

 

  뼈를 묻으며 살아가는 것은 사막의 오랜 관습. 별들의 장지葬地가 된 이곳에서 떠돌이 바람도 수없이 뒤꿈치를 물렸을 것이다. 그때 물결 같은 발자국이 찍혔을 것이다.

 

  사구砂丘를 넘어온 회오리바람이 모래밭을 헤집는다.

  짝을 잃은 수컷들이다.

 

 


ㅡ계간『시와 정신』(2011. 봄)

ㅡ시집『글러브 중독자』(애지,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