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이상국 - 봄을 기다리며 / 비를 기다리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8. 30. 21:06
728x90

 

봄을 기다리며

 

이상국

 

 

겨울산에 가면

나무들의 밑동에

동그랗게 자리가 나있는 걸 볼 수 있다

자신이 숨결로 눈을 녹인 것이다

저들을 겨우내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을 퍼올려

몸을 덥히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가까이 가보면

모든 나무들이

잎이 있던 자리마다 창을 내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어디에선가 "봄이다!" 하는 소리만 났다 하면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겨울에 둘러싸인 달동네

멀리서 바라보면 고층빌딩 같은 불빛도

다 그런 것이다

 

 

 

ㅡ시집『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창작과비평사, 2005)

 


------------------------
비를 기다리며


이상국

 


비가 왔으면 좋겠다
우장도 없이 한 십리
비 오는 들판을 걸었으면 좋겠다
물이 없다
마음에도 없고
몸에도 물이 없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멀리 돌아서 오는 빗속에는
나무와 짐승 들의 피가 묻어 있다
떠도는 것들의 집이 있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문을 열어놓고
무연하게
지시랑물 소리를 듣거나
젖는 새들을 바라보며
서로 축은했으면 좋겠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아주 멀리서 오는 비는
어느 새벽에라도 당도해서
어두운 지붕을 적시며
마른 잠 속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ㅡ시집『뿔을 적시며』(창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