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윤금초] - 땅끝 / 주몽의 하늘 / 천일염 / 엘니뇨, 엘니뇨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12. 4. 09:37
728x90

 

(현대시 100주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한 한국문학선집에 수록된 시 4편)

   

 

땅끝


윤금초

 

 

반도 끄트머리
땅끝이라 외진 골짝
뗏목처럼 떠다니는
전설의 돌섬에는
한 십년
내리 가물면
불새가 날아온단다.


상아질(象牙質) 큰 부리에
선지빛 깃털 물고
햇살 무동 타고
미역 바람 길들여 오는,
잉걸불
발겨서 먹는
그 불새는 여자였다.


달무리
해조음
자갈자갈 속삭이다
십년 가뭄 목마름의 피막 가르는 소리,
삼천년에 한번 피는
우담화 꽃 이울 듯
여자의
숙 깊은 궁문(宮門)
날개 터는 소릴 냈다.


몇날 며칠 앓던 바다
파도의 가리마 새로
죽은 도시 그물을 든
낯선 사내 이두박근……
기나긴 적요를 끌고
휘이, 휘이. 날아간 새여.

 

 

 

(『네 사람의 얼굴』. 문학과지성사. 1983)

 

--------------------
  주몽의 하늘


  윤금초

 

 

  그리움도 한 시름도 발묵(潑墨)으로 번지는 시간
  닷되들이 동이만 한 알을 열고 나온 주몽
  자다가 소스라친다, 서슬 푸른 살의(殺意)를 본다.


  하늘도 저 바다도 붉게 물든 저녁답

  비루먹은 말 한 필, 비늘 돋은 강물 곤두세워 동부여 치욕의 마을 우발수를 떠난다. 영산강이나 압록강가 궁벽한 어촌에 핀 버들꽃 같은 여인, 천제의 아들인가 웅신산 해모수와 아득한 세월만큼 깊고 농밀하게 사통한, 늙은 어부 하백(河伯)의 딸 버들꽃 아씨 유화여, 유화여. 태백산 앞발치 물살 급한 우발수의, 문이란 문짝마다 빗장 걸린 희디 흰 적소(謫所)에서 대숲 바람소리 우렁우렁 들리는 밤 발 오그리고 홀로 앉으면 잃어버린 족문(足紋) 같은 별이 뜨는 곳, 어머니 유화가 갇힌 모략의 땅 우발수를 탈출한다.

  말갈기 가쁜 숨 돌려 멀리 남으로 내달린다.


  아, 아, 앞을 가로막는 저 검푸른 강물.
  금개구리 얼굴의 금와왕 무리들 와 와 와 뒤쫓아 오고 막다른 벼랑에 선 천리준총 발 구르는데, 말 채찍 활등으로 검푸른 물을 치자 꿈인가 생시인가, 수천 년 적막을 가른 마른 천둥소리 천둥소리…, 문득 물결 위로 떠오른 무수한 물고기, 자라들, 손에 손을 깍지끼고 어별다리 놓는다. 소용돌이 물굽이의 엄수를 건듯 건너 졸본천 비류수 언저리오녀산성에 초막 짓고 도읍하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사신도(四神圖) 포치(布置)하는, 광활한 북만(北滿)대륙에 펼치는가 고구려의 새벽을…….
  둥 둥 둥 그 큰북소리 물안개 속에 풀어놓고.

 

 

 

(『주몽의 하늘』. 문학수첩. 2004)

 

----------------------
천일염


윤금초

 

 

가 이를까, 이를까 몰라
살도 뼈도 다 삭은 후에


우리 손 깍지 끼었던 그 바닷가
물안개 저리 피어오르는데.


어느덧
절명시 쓰듯
천일염이 될까 몰라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고요아침. 2003)

 

-----------------
엘니뇨, 엘니뇨


윤금초

 

 

들끓는 적도 부근 소용돌이 물기둥에
우우우 높새바람, 태평양이 범람한다
엘니뇨 이상 기온이 내안(內岸) 가득 밀린다.


날궂이 구름 덮인 심란한 나의 변방(邊方).

이름 모를 기압골이 상승하고 소멸하는……

엘리뇨 기상 이볌이 거푸 밀어닥친다.


바닷가재, 온갖 패류, 숨이 찬 산호초에
우리 친구 물총새 끝내 세상을 뜨는구나.
저마다 세간을 챙겨 브릉부릉 뜨는구나.

 

 

*엘니뇨현상 이상 조류가 갑자기 밀려오는 기상 이변 현상.

 

 


(『네 사람의 얼굴』. 문학과지성사. 1983)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