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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내 / 김사인 - 겨울의 빛 / 김명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12. 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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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내


김사인

 

 

한 사내 걸어간다 후미진 골목

 

뒷모습 서거프다 하루 세 끼니

 

피 뜨거운 나이에

 

처자식 입 속에 밥을 넣기 위하여

 

일해야 하는 것은 외로운 일

 

몸 팔아야 하는 것은 막막한 일

 

그 아내 자다 깨다 기다리고 있으리

 

찻소리도 흉흉한 새로 두시

 

고개 들고 살아내기 어찌 이리 고달퍼

 

비칠비칠 쓰레기통 곁에 소변을 보고

 

한 사내 걸어간다 어둠 속으로

 

구겨진 바바리 끝엔 고추장 자욱

 

 


―시집『밤에 쓰는 편지』(도선출판 청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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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빛

 

김명인

 

 

골목 안 국밥집에는 두 사내가 마주앉아   

허름한 저녁을 들고 있다, 뚝배기 속으로  

달그락거리던 숟갈질이 빈 반찬그릇에서 멎자  

한 사내는 아쉬운 듯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붙여 물고  

유리창 밖을 내다본다, 마주앉은 사내는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식은땀은 닦아 낼  

겨를도 없이 남은 국물을 들이마시고  

마지막 깍두기를 씹고 있다, 언제 왔는지 어둠이   

깊은 심연처럼 그릇 바닥에 고여  

어둑히 내다보면 구겨지는 골목으로 벗어나며   

저 사내에게도 갈 곳이 있다는 것일까  

어느새 웃자란 수염이 차지한 뽀쪽턱을 비껴  

추위에 움츠린 겨울의 가등(街燈)들이 무심한 듯  

길바닥에 일렁거리지만  

불빛이 감추는 망막 때문에 유리창 안쪽으로  

따뜻한 것들이 기웃거리는지  

아까부터 군청색 작업복의 사내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대책 없는 허술한 앞날일 뿐  

잿빛 잠바도 모르는 사내들의 길 위로 어디서나   

흔해빠진 길들을 차지하려고 사람들은   

저렇게 바쁘게 오고 간다   

 

 

 

시집 물 건너는 사람 (세계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