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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의 누이/이수익 - 카톡 좋은 시 73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4. 2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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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좋은 시 73  

어느 밤의 누이

 

이수익

   

한 고단한 삶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혼곤한 잠의 여울을 건너고 있다.

 

밤도 무척 깊은 귀가길,

전철은 어둠 속을 흔들리고

 

건조한 머리칼, 해쓱하게 야윈

핏기 없는 얼굴이

어쩌면 중년의 내 이종사촌 누이만 같은데

여인은 오늘밤 우리의 동행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어깨에 슬픈 제 체중을 맡긴 채

송두리째 넋을 잃고 잠들어 있다.

 

어쩌면 이런 시간쯤의 동행이란

천 년만큼 아득한 별빛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잠시 내 어깨를 빌려주며

이 낯선 여자의 오빠가 되어 있기로 한다.

전철은 몇 번이고 다음 역을 예고하며

심야의 지하공간을 달리는데

  

시집꽃나무 아래의 키스(천년의시작,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