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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모윤숙 - 카독 좋은 시 108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6. 5.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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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좋은 시 108   

<강북구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모윤숙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시 그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마지막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 위와 가시숲을 이순신같이, 나풀레옹같이, 시이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크바 크레물린탑까지 밀어 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 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에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나르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레 숨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내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고.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아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다. 다시 오지 않으리다.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 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서백리아 먼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 해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리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을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시집《풍랑》(1951)수록.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모윤숙 - 낭송 단이>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모윤숙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시
그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마지막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 위와 가시숲을
이순신같이, 나풀레옹같이, 시이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크바 크레물린탑까지 밀어 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 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에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나르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레 숨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내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고.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아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다. 다시 오지 않으리다.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 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서백리아 먼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 해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리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을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