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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박형진 - 카톡 좋은 시 140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7. 1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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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좋은 시 140

     자화상


     박형진

 


     마당 앞에 풀이나 뽑느라
     아무것도 못 했어

     거울 앞에 서면


     웬 낯선 사내


     오십 넘겼지 아마? 

 

 

    

    ―시집『콩밭에서』(보리, 2011)
 


  

  자화상은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고 시의 자화상 또한 시인 자신의 날것의 고백이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외형적인 직업이라면 모를까 원천적으로 은유의 태생에 갇혀 에둘러 살아야하는 시인이 자신을 제재로 하여 속속들이 자신을 까발린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의외로 자화상제목의 시가 많다.

 

  이미란, 정희성, 박두진. 박용래, 한하운, 이수익, 김초혜, 고은, 최금녀, 신현림, 김현승, 유안진, 임영조, 노천명, 공광규, 마종기, 김상미, 황성희, 박지우, 김언 시인 등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아 신인 같은 무명의 시인부터 원로 중견 시인까지 실로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많은 자화상의 시를 썼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자화상 하면 떠오르는 두 편의 시가 있다. 시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회자되고 있는 시이다. 윤동주 시인의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로 시작되는 자화상은 시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한 두 구절쯤 줄줄 외는 시이다. 또 한 편은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이다. ’애비는 종이었다는 가계의 고백으로 시작되지만 실제로 서정주 시인의 아버지는 종이 아니고 인촌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었다고 한다. 이 두편의 시는 자화상 시의 백미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노천명 시인의 자화상‘ 시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외형과 성격을 묘사하고 있어 시의 맛이 덜하다. 그래서 자화상시보다 사슴’ 이라는 시에서 노천명 시인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임영조 시인의 자화상또한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맥락으로 하고 있는데 염소를 찾아서 1, 2, 3편의 시가 더 임영조 시인의 자화상 같다. 한센병 시인 한하운은 자화상에서 한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한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나의 얼굴.‘이라며 한탄을 하기도 하지만 천형의 병이라 일컫는 사람들의 아픔을 보리피리라는 시에 서정적으로 담기도 했다.

 

  이렇게 직접적인 제목의 자화상 시 외에도 시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사상과 혁명, 노동과 종교의 시를 스스로에게 써 바치며 분신처럼 자조와 독백으로 끊임없이 또 다른 자화상 시를 만들어내고 있다. 어쩌면 시인들이 쓰는 모든 시는 모두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많은 자화상 시 중에 비교적 짧은 박형진 시인의 자화상 시 한 편을 본다. 길지 않은 시에 일생의 책 양편을 펼쳐놓은 듯하다. 백세 시대에 오십이면 청춘인 것 같지만 몸도 기력도 쇠해지는 시기, 생애 절정의 시간이 지나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시 밖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시인에게 세태의 성공이나 물질은 먼 얘기, 어느 날 오십 고개를 넘어 문득 들여다 본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마당의 풀이나 뽑으며 아무 것도 못했다는데 시를 쓰는 일이 마당의 풀을 뽑는 것만큼 숭고하지 않을까 자위하며 위안 삼으시기를…



자화상 시 모음 - 윤동주,서정주,노천명,김현승,유안진,최금녀, 신현림, 이수익, 고은, 임영조, 정희성 외...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43143




자화상


박형진

 


마당 앞에 풀이나 뽑느라
아무것도 못 했어

거울 앞에 서면


웬 낯선 사내


오십 넘겼지 아마?


 

 

시집『콩밭에서』(보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