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좋은 시 142 다음 생에 할 일들 안주철
아내가 운다.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 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 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는 밥을 차리고 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된다.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아내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ㅡ『작가들』(2013. 여름) —시집『다음 생에 할 일들』(창비, 2015) |
다음 생에 할 일들
안주철
아내가 운다.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 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 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는 밥을 차리고
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된다.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아내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ㅡ『작가들』(2013. 여름)
—시집『다음 생에 할 일들』(창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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