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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김사인 - 카톡 좋은 시 155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7. 3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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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좋은 시 155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김사인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그 처자 볕에 그을려 행색 초라하지만
  가슴과 허벅지는 소젖보다 희리
  그 몸에 엎으러져 개개 풀린 늦잠을 자고
  더부룩한 수염발로 눈곱을 떼며
  날만 새면 나 주막 골방 노름판으로 쫓아가겠네
  남는 잔이나 기웃거리다
  중늙은 주모에게 실없는 농도 붙여보다가
  취하면 뒷전에 고꾸라져 또 하루를 보내고
  나 갈라네, 아무도 안 듣는 인사 허공에 던지고
  허청허청 별빛 지고 돌아오겠네
  그렇게 한두 십년 놓아 보내고
  맥없이 그 처자 몸에 아이나 서넛 슬어놓겠네
  슬어놓고 무능하겠네
  젊은 그 여자
  혼자 잉잉거릴 뿐 갈 곳도 없지
  아이들은 오소리 새끼처럼 천하게 자라고
  굴속처럼 어두운 토방에 팔 괴고 누워
  나 부연 들창 틈서리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내다보겠네
  쓴 담배나 뻑뻑 빨면서 또 한세월 보내겠네
  그 여자 허리 굵어지고 울음조차 잦아들고
  눈에는 파랗게 불이 올 때쯤
  나 덜컥 몹쓸 병 들어 시렁 밑에 자리 보겠네
  말리는 술도 숨겨 놓고 질기게 마시겠네
  몇해고 애를 먹어 여자 머리 반쯤 셀 때
  마침내 나 먼저 숨을 놓으면
  그 여자 이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리
  나 피우던 쓴 담배 따라 피우며
  못 마시던 술도 배우리 욕도 배우리
  이만하면 제법 속절없는 사랑 하나 안 되겠는가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시는 김명인 시인의 「너와집 한 채」가운데 한 구절에서 운을 빌려왔다.

 


시집『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김사인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그 처자 볕에 그을려 행색 초라하지만
가슴과 허벅지는 소젖보다 희리
그 몸에 엎으러져 개개 풀린 늦잠을 자고
더부룩한 수염발로 눈곱을 떼며
날만 새면 나 주막 골방 노름판으로 쫓아가겠네
남는 잔이나 기웃거리다
중늙은 주모에게 실없는 농도 붙여보다가
취하면 뒷전에 고꾸라져 또 하루를 보내고
나 갈라네, 아무도 안 듣는 인사 허공에 던지고
허청허청 별빛 지고 돌아오겠네
그렇게 한두 십년 놓아 보내고
맥없이 그 처자 몸에 아이나 서넛 슬어놓겠네
슬어놓고 무능하겠네
젊은 그 여자
혼자 잉잉거릴 뿐 갈 곳도 없지
아이들은 오소리 새끼처럼 천하게 자라고
굴속처럼 어두운 토방에 팔 괴고 누워
나 부연 들창 틈서리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내다보겠네
쓴 담배나 뻑뻑 빨면서 또 한세월 보내겠네
그 여자 허리 굵어지고 울음조차 잦아들고
눈에는 파랗게 불이 올 때쯤
나 덜컥 몹쓸 병 들어 시렁 밑에 자리 보겠네
말리는 술도 숨겨 놓고 질기게 마시겠네
몇해고 애를 먹어 여자 머리 반쯤 셀 때
마침내 나 먼저 숨을 놓으면
그 여자 이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리
나 피우던 쓴 담배 따라 피우며
못 마시던 술도 배우리 욕도 배우리
이만하면 제법 속절없는 사랑 하나 안 되겠는가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시는 김명인 시인의 「너와집 한 채」가운데 한 구절에서 운을 빌려왔다.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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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집 한 채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질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은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시집『물 건너는 사람』(세계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