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좋은 시 157
애월리(涯月里)에서 보내는 편지 정영숙
파도가 씻기고 간 검은 바위 귀퉁이에 감기지 않는 커단 눈이 생겼습니다 하얀 소금기를 담은 동공 속 그믐달이 까무룩히 기울어지고 그 기울어지는 각도에 따라 바위의 몸이 점차 오그라듭니다
우레처럼 달려와 온 몸으로 부딪치며 울부짖던 당신 흰 포말의 아우라 속 하얀 물새 한 마리 날아오르는 걸 봅니다 단단한 부리가 쪼아대던 현무암, 여린 등줄기에 영원히 감기지 않는 눈이 생겼습니다 그 눈은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영원의 문 만월이 뜨면 당신이 오는 길을 알고 등에 붙은 내 커단 눈은 천연의 소금기를 하얗게 뿜습니다
천년 동안 당신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거북을 닮아가는 내 몸에는 밤에도 대낮처럼 환한 달맞이꽃, 화등(花燈)이 켜지고 내 눈이 쏘는 인광에 어김 없이 애월(愛月)인 나를 찾아 옵니다
내가 잠시 두고 온 애월리 바닷가, 거북 바위에는 등 뒤에도 빛나는 눈이 있어 달빛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당신의 발자국 소리 듣습니다 은하수 저편, 은빛 무늬 짜는 당신의 날갯짓 소리 듣는 여름밤입니다
ㅡ격월간 『유심』 (2011년 11-12월호) |
‘애월’이 달에 있는 달선녀 이름인가. 애월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애월에 대한 동경심이 더 생길 것 같은 이름이다. 애월, 애월 하면 애월에게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애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애월은 제주도에 있는 한 바닷가 마을의 이름. 도대체 이 애월의 바닷가가 어떻게 생겼기에 많은 시인들이 앞다투어 애월을 보고지고 했는가. ‘자화상‘처럼 애월을 노래한 시인을 많다. 아내와 제주도에 여행을 갔다가 아내의 일정에 맞추어 가보지도 않고 ’애월‘을 썼다는 이수익 시인을 비롯하여 엄원태 시인의 ’애월‘, 서안나 시인의 ’애월涯月 혹은‘, 정윤천 시인의 ’애월에 이르는‘, 이대흠 시인의 ’애월(涯月)에서, ‘涯月’이라는 부제가 붙은 정균칠 시인의 ‘달의 난간 ’, 김왕노 시인의 ‘ 애월에서’, 이재무 시인의 ‘애월에서’ 부제가 붙은 ‘인생’, 이상국 시인의 ‘애월涯月에서’, 이정환 시인의 ‘애월 바다’ 시조까지... 아마 내가 읽어보지 못한 애월에 대한 시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여행을 자주 해보지 않은데다 어쩌다 제주도를 가보기는 했어도 애월 바닷가를 가보지 못했다. 문득 애월이 생각이 났지만은 유명세를 따라 뒤늦게 찾아간 이는 어쩌면 실망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 애월을 쓴 시인들이 애월을 다 가보고 시를 쓴 것일까. 가본다고 해서 다 시가 쓰여지는 것일까. 이수인 시인처럼 아내와 동행한 제주도에는 시인이 가보고 싶어하는 애월바다보다 훨씬 더 유명한 관광지가 많다. 성산일출봉도 있고 민속촌, 정방폭포, 산굼부리와 마라도와 우도, 그 외 가 본 사람 또 오라고 새로운 볼거리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제주도가 초행인 아내를 위해서 애월을 양보한 이수익 시인은 나중에 애월을 가보셨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시는 쓰셨다.
타고난 천재 시인들은 일상어가 다 시어일 테지만 죽어라고 노력하고 공부해서 어쩌다 시 같지 않는 시 한 편을 쓰는 무명의 시인들에게도 애월은 가보고 싶은 곳이다. 간다고 해서 시가 온다는 보장은 없지만은 어설픈 시라도 한 편 건질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애월 시 모음 - 정희성/이수익/엄원태/서안나/정윤천/이대흠/정군칠/김왕노/이정환/이재무/정영숙...외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52506
애월리(涯月里)에서 보내는 편지
정영숙
파도가 씻기고 간 검은 바위 귀퉁이에
감기지 않는 커단 눈이 생겼습니다
하얀 소금기를 담은 동공 속
그믐달이 까무룩히 기울어지고
그 기울어지는 각도에 따라
바위의 몸이 점차 오그라듭니다
우레처럼 달려와
온 몸으로 부딪치며 울부짖던 당신
흰 포말의 아우라 속
하얀 물새 한 마리 날아오르는 걸 봅니다
단단한 부리가 쪼아대던 현무암, 여린 등줄기에
영원히 감기지 않는 눈이 생겼습니다
그 눈은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영원의 문
만월이 뜨면
당신이 오는 길을 알고
등에 붙은 내 커단 눈은
천연의 소금기를 하얗게 뿜습니다
천년 동안
당신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거북을 닮아가는 내 몸에는
밤에도 대낮처럼 환한 달맞이꽃, 화등(花燈)이 켜지고
내 눈이 쏘는 인광에
어김 없이 애월(愛月)인 나를 찾아 옵니다
내가 잠시 두고 온
애월리 바닷가, 거북 바위에는
등 뒤에도 빛나는 눈이 있어
달빛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당신의 발자국 소리 듣습니다
은하수 저편, 은빛 무늬 짜는 당신의 날갯짓 소리 듣는
여름밤입니다
ㅡ격월간 『유심』 (2011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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